[기고] 친구 따라 거름 지고 장에 간다(배용진 전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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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친구 따라 거름 지고 장에 간다(배용진 전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3.04.1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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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 회장(89세)

 

한 아파트에서 같이 놀던 친구가 이사를 가게 되어 친구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초등학생을 보고 어떤 감정일까 생각에 잠긴 일이 있었다.

우리 속담에 “친구 따라 거름 지고 장에 간다.”라는 말이 있다. 좀 모자라는 사람의 처신으로 표현되기도 하겠지만 깊은 뜻은 사랑과 신뢰이다. 사랑에는 국경, 신앙, 인종, 신분을 초월한다는 말과 상통하는 표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사랑과 신뢰, 이 두 표현의 공통분모는 친(親)함이다.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인생은 성공했다고 했다.

진정한 친구 하나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함의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진정한 친구를 정의하기에 앞서 한자(漢字) 문화권에서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인 친할 친(親) 자를 분해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접근될 것으로 이해가 된다. 친(親) 자는 입, 목, 견(立, 木, 見) 세 글자가 합성된 한자이다.

나무는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선 자세로 그대로이고 바람이 불어도 뿌리만 견뎌주면 서서 견딘다. 그래서 설 립(立) 밑에 나무 목(木)을 하고 옆에 볼 견(見) 자를 붙였다. 무엇을 보고 있을까?

누구 건 사랑하는 대상이다. 부모, 형제, 친구, 연인은 손익계산을 하지 않는 사이다.

나무는 비가 온다고 언덕에 기대지 않는다. 눈이 온다고 가지를 접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고 앉지 않는다.

서서 지켜보다가 즐거운 일을 보면 같이 웃어준다. 어쩌다 슬픈 일이 보이면 함께 울어준다.

좋은 일이 생겨 장에 가는 친구를 만난 거름을 진 친구는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같이 웃어주는 것이 좋아 거름 지게를 지고도 친구와 함께 장에 간다. 이것이 진정한 친(親)의 모습이다. 효(孝)의 윤리도 근본이 부자유친(父子有親)으로 ‘친’에서 시작한다.

서양의 기독교 윤리에 효가 십계명에 있고 동양의 유교 윤리에는 효가 만행(萬行)의 근본이라 적시했다.

효의 윤리는 반포(反哺 :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의 윤리이다.

그러나 산업화 발전은 수백 년 지켜온 삶의 틀을 흔들어 놓고 말았다.

산업화가 먼저 시작한 서구는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과 자식이 부모 노후 봉양을 분리하여 부모의 노후 봉양은 복지정책으로 국가가 맡아 발전시켜 왔다. 복지 천국이라 일컫는 스웨덴과 같은 나라에서는 반포지효의 관념이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발전으로 역기능적 사회 변화를 예방하는 정책을 준비하지 못해서 지금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저출산, 고독사, 노숙자, 자살 등 국가발전의 동력을 저해하는 지경에 왔다. 한 사례로 선진국형 노인복지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못하고 있으니 젊은이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요즘 자식 노릇 잘하는 모델이 전파 효(電波孝, 전화를 자주 하는 효도), 계좌 효(計座孝, 용돈 잘 챙기는 효도), 양로 효(養老孝, 좋은 양로원에 쉬게 하는 효도)이다.

현실적으로 이 효도를 받는 노부모가 얼마나 될까? 핵가족이 고착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확산한 것은 필연적이다.

독일이 부모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농촌에서 정책적으로 혜택을 주는 것을 관심을 두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농촌이 소멸하고 있는데도 걱정하지 않는 정치권을 보면 가슴이 멍할 뿐이다. 이 난제의 해법이 가족문화와 산업화 그리고 복지정책을 종합적으로 현대문명과 절충된 정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정책의 근간(根幹)이 친(親)과 효(孝)가 연결된 윤리에서 발상되어야 한다. 거름 지고 친구 따라 장에 가는 친구의 친(親)함과 아버지 거처에 온기를 확인하고 군불을 더 지필지 말지를 아버지와 대화하는 부자유친(親)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화와 현대적 디지털 문명이 접목되어 거름 지고 친구 따라 장에 가는 우리 문화를 살려내는 수준 높은 숙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때 진정한 선진국이 되고 행복한 선진국 평화 통일을 성취하는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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