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수도 이제 보수다워지자(정대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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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보수도 이제 보수다워지자(정대호 시인)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3.04.02 06: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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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우리나라 정치지형을 분석할 때 보수와 진보로 나눈다. 사실로 그럴까.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정치판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분할로 나누어지고 나머지 지역들이 이에 동조하는 세력들의 영역확장으로 편성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래도 다른 한 편으로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기준들이 조금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는 생각에서 기존의 것을 지키려고 하는 반면 진보는 인류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새로운 시도로 현재의 판도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수가 기존의 것들을 지켜야 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것이 나라와 민족이 아닐까. 자기 민족의 삶의 터전인 나라를 지키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민족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고 주체적이고 자주적이어야 한다. 자기 민족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보수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민족적으로 자기비하를 하여 우리 민족은 못나서 무능하다고 믿으며 우리 국토를 지키는 데에는 남의 나라에 의존하려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위기에 처한 이참에 우리나라의 보수도 판을 바꾸어 새판을 짜자. 그렇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보수는 젊은 사람들에게 외연의 확장에 한계가 있고 판세는 점점 약해질 것이다. 현재의 병든 보수도 정치적으로 그 세력이 가장 튼튼한 지역이 경상도이고 건강한 보수로 가장 앞장서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지역도 역사적으로 봐서 경상도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자각이 일어난 시기들을 보면 대개 민족적 생명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다. 고려말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 경산에서 태어난 일연선사는 군위의 인각사에서『삼국유사』를 썼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을 때에 항일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지역도 경상도이다. 민족의 생명력이 없으면 그 구성원인 개인의 생명력도 없다는 것을 먼저 자각하고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모든 것을 바쳤다. 왕산 허위나 석주 이상룡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한 가문의 사람들을 이끌고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그들도 구미와 안동에서 태어난 경상도 사람들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한 이후 우리나라에 미군과 소련군이 들어와 분할 지배에 들어갔을 때에도 반외세의 기치를 제일 먼저 들어 시월 항쟁의 시작점이 된 곳도 대구인 경상도 땅이다. 그들은 우리 민족이 민족적 경쟁력에서 일시적으로 뒤져 민족의 삶의 터전인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이 노예 상태가 되었을 때 민족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그 삶의 터전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개인의 생명력을 약하게 하지만 역사적 긴 안목으로 볼 때 민족적 생명력을 살리고 나아가 궁극적으로 개인의 생명력을 살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재의 보수는 왜 병든 것일까. 소위 보수의 집회라고 하는 장소를 보라. 일장기를 들고, 성조기를 들고 나온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나오기까지 한다. 이들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판단하는지 의심스럽다. 이들은 우리 민족은 스스로 못나고 무능하여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어떻게 보수라고 할 수 있는가. 보수라고 한다면 그것은 병든 보수다. 현재의 보수가 이렇게 병든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역사적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10년 일본과 조선이 병탄되었을 때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에게 식민사관을 주입했다. 일본인들은 서구적 근대화를 먼저 받아들이고 서양인들이 아시아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만든 식민사관을 일본인과 조선인의 관계에도 그렇게 대입했다. 서양의 백인들은 스스로 우수한 민족이어서 역사발전을 하여 현재의 근대화를 이루었는데 아시아 아프리카의 유색인종들은 야만인이어서 스스로 역사발전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먼저 근대화에 도달한 그들이 아시아 아프리카에 근대 문명을 가르쳐주려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수탈하고 인종 차별하는 정당성을 인종적 우열관계를 설정하여 정당화했다. 우생학을 민족차별에 악용한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백인들의 우월성을 이것으로 정당화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할 때에도 그들은 탈아시아를 외치며 아시아에서 일본인들만이 서양의 백인들과 같이 역사적 발전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서구적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민족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문학에서는 민족계몽으로 나타난다. 계몽을 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것인 민족의 우열의식으로 확대되어 우리 민족이 열등하다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한다면 이는 심각한 수준의 민족적 병폐이다. 특히 이광수에 이르면 그 병이 심각하다. 그는 1922년 『개벽』에 발표한 「민족개조론」에서 ‘피와 뼈와 살’까지도 일본인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1989년 일신학원에 일자리를 구했을 때이다. 그때 50대 후반의 화학 선생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일본인은 아주 우수한데 조선인은 형편없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과자도 달게 맛있게 만드는데 우리나라 과자라는 것은 영 맛이 없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다고 하지만 당시 우리 민족은 고무신 한 켤레, 비누 하나 만들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민족이 어떻게 스스로 국가를 이끌어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일제의 식민지배 수탈구조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1945년 9월 7일 하지는 미군을 이끌고 점령군으로 들어온다. 1946년 채만식은 단편 「역로」에서 마마 귀신은 떡시루를 놓고 빌면 나가지만 미군들은 떡시루를 놓고 빌어도 나가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미군들은 점령지에서 전용 열차 칸에 듬성듬성 앉아서 조선 원주민들이 객차 안을 가득 채우고도 다 타지 못해서 열차 지붕 위에까지 사람들이 타는 것들을 보면서 키득거리는 모습이 있다. 이렇게 미군들이 한반도에서 주둔을 고착화하면서 그들은 미국인들에 대한 조선인의 열등화 교육을 심화한다. 미 점령군 정책에 방해되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로 몰아서 숙청하거나 구속하고 그 자식들까지 신원조회라는 연좌제 제도를 만들어서 사회적 따돌림을 한다. 제주 4.3항쟁 때에는 토벌군의 정훈교육에서 조선인을 노루에 비유하여 죽여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미국인과 조선인에 대한 우열관계를 설정하고 현실정책에서 이를 실행했다. 여기에 6.25 남북전쟁을 겪으면서 조금 남아있는 조선 경제의 물적 토대도 완전히 붕괴한다. 195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시대가 참 참담했다. 먹을 것이 극단적으로 부족했던 그때 대봉동 미군부대가 가까운 대구 삼덕국민학교 운동장에는 가마솥을 걸어놓고 미군들이 먹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 와서 그것을 끓여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꿀꿀이 죽이다. 그 꿀꿀이 죽을 한 그릇 얻어먹기 위해 운동장에 그릇을 들고 줄을 섰었다고 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가 저 멀리 미군이 한 사람 나타나면 아이들이 물려가 ‘헬로 껌’을 외쳤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미군은 껌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 흙 마당에 뿌리고 군홧발로 쓱 문질렀다고 한다. 그래도 그 껌의 단맛을 맛보기 위해 머리를 부딪치며 땅바닥으로 손을 내밀고 서로 주우려고 다투었다고 한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외국군인 앞에서 친구들의 그런 모습이 속상했지만 굶주린 친구들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나이 많은 세대들은 그렇게 그 세월을 살았다. 급기야 보수 우파의 유명한 논객 중의 한 사람은 2000년대에 와서도 미군의 범죄자를 국내 법정에 세우는 것을 반대했다. 그의 논리는 1등 국가의 국민들을 3등 국가인 우리나라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민족적 국가적 열등의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보수의 집회에 부부가 손을 잡고 모인다. 태극기 집회에 일장기와 성조기도 들고 모인다. 1970년대 세대만 해도 이제 배고픔을 모르고 살아왔다. 1980년대 이후의 세대는 경제성장의 토대 위에서 풍요롭게 자랐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사서 쓰고 자신이 하고 싶으면 부모의 경제적 후원으로 다 하면서 자랐다. 그들은 개인적 차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물며 노년층의 생각처럼 민족적 열등의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다. 이제 서구화가 곧 근대화, 서구 문명의 이식이 바로 근대화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제 ‘서양에서는 이렇게 하더라’,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는데 우리에게 얼마나 맞는가를 따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아가 좀 더 검토하여 우리에게 더 적합한 것으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들이 민족적 자존심과 국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근거를 일연선사는 『삼국유사』에서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다. 그는 「단군신화」에서 하늘나라 황제인 환인의 둘째 아들인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이 땅으로 내려와서 나라를 세웠다고 했다. 우리 민족은 천신의 후예인 것이다. 이 지상에서 어떤 민족보다 우수하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환웅이 지상을 늘 살펴보다가 우리나라가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내려와서 나라를 세웠다. 우리나라는 지상에서 가장 사람이 살기 좋다는 곳이다. 일연선사는 천신의 후예니까 민족적 자존심을 가지고, 천신이 선택한 곳이니까 국토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이 땅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 땅에서 우리 민족의 나라를 굳건히 세워 지켜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들에서 보기 어려운 민족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을 주신으로 믿는다. ‘한(큰)+울(우리, 울타리)+님’ 즉 ‘한울님>하눌님>하늘님>하느님’의 큰 울타리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다. 작은 울(우리, 울타리)이 담장으로서 야생의 짐승들로부터 가족의 생명을 지켜준다면 큰 울타리는 국가나 민족으로서 국가나 민족 구성원의 모든 생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느님 사상, 이런 큰 울타리 사상은 역사에서 민족의 생명력이 약해졌을 때 자신의 한 몸을 던져 민족적 생명력을 키운 힘의 원동력이다. 다른 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신화가 힘을 키워 싸워서 이기는 정복문화인 데 비해 우리 민족의 신화는 큰 울타리 사상으로서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홍익인간)’는 공동체 문화의 의식을 가졌다.

보수가 건강한 보수로 탈바꿈하는데 이제 경상도가 앞장서야 한다. 보수의 집회에서 아직도 일본이나 미국의 보호를 주장하며 일장기나 성조기를 들고 오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병든 보수다. 그들은 민족적 열등의식을 심화한다. 이제 우리 민족도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생각으로 무장해야 한다. 보수의 집회라면 적어도 태극기를 들고 한반도기를 들고 모이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민족적 자존심을 높이고 국토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외세의존의 국방을 말하는 곳이 아니라 자주국방을 주장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우방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믿을 수 없다. 부자의 착한 아들은 있어도 착한 부자는 없듯이 강대국의 착한 백성은 있어도 착한 강대국은 없다. 지금 소련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보라.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운 우방도 침략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 미국도 가까운 우방이라던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도 박근혜 정부 시절 잠시 외교적 판단을 잘못하여 미국에게 성주에 미군의 사드기지를 설치할 땅을 빼앗기고 중국에게 그것을 이유로 무역 보복을 당한 적이 있다. 우리 민족이 민족적 운명을 의지할 강대국은 지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연대를 하고 도움은 받을 수 있어도 믿고 의지할 곳은 없다. 전시작전지휘권을 외국에 맡겨놓고 그것의 환수를 주장하지 못하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또한 민족문제인 대북문제에 대해서는 외국의 간섭을 벗어나 같은 민족으로서 자주적 판단에 따라 대화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보수다운 보수의 품격이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볼 때 동북아시아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작은 섬이다. 동쪽으로는 멀리 바다 건너 미국을 비롯하여 가까이 일본이라는 강대국이 있으며 서북으로는 중국과 소련이 인접해 있다. 초강대국들의 한가운데 그들과 팽팽한 긴장의 끈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쟁이 없는 평화를 유지하며 민족 번영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지도자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과제는 한반도가 풀어야 하는 중대한 숙명 가운데 하나다. 이것이 나라를 지키고 민족의 생명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원칙과 현실의 복잡한 과제들을 우리나라, 우리 민족 중심으로 풀어가는 능력을 키우고 이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보수다. 이렇게 보수가 재편성될 때 진보는 진보답게 새 판을 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보수교육의 순례지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항일 운동의 상징인 독립운동가들의 옛 삶의 터전을 복원하여 후학들의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그들의 삶을 기리며 그들의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 왕산 허위 선생의 생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의열단의 부단장 이종암 의사의 생가 등을 복원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민족의 의기를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민족혼을 일깨워야 한다.

 

참고 : 상기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는 무관합니다.

 

정대호 시인 겸 문학평론가

 

 

<정대호 시인, 문학평론가>

1958년 청송군 진보면 부곡리 출생

부곡초등학교 18회, 진성중학교 8회 졸업

대건고등학교 26회 졸업

경북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4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활동

시집 : 다시 봄을 위하여(1985년)

겨울 산을 오르며(1994년)

지상의 아름다운 사랑(2000년)

어둠의 축복(2008년)

마네킹도 옷을 갈아입는다(2016년)

가끔은 길이 없어도 가야 할 때가 있다(2020년)

평론집 : 작가의식과 현실(1997년)

세계화 시대의 지역문학(2002년)

현실의 눈, 작가의 눈(2004년)

산문집 : 원이의 하루(2015년)

계간 ‘사람의 문학’ 발행인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광역시 지회장 역임

대구 이육사기념사업회 상임 대표 역임

10월 문학제 위원장

사단법인 10월 항쟁 유족회 한국전쟁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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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 2023-04-03 10:19:07
지금 모습이 지난 테프트-가쓰라에 동조하는 것으로 밖어 보이지 않아 억장이 무너지는 듯 합니다
모든 국가는 영원한 우방은 없으며, 어디까지나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할 뿐인데
외줄타듯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현재 모습은 지지율로 반영되고 있네요
정말 감사히 정독하고, 많은 생각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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