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선(僞善)의 평화와 위악(僞惡)의 평화(정대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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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위선(僞善)의 평화와 위악(僞惡)의 평화(정대호 시인)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3.03.2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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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보면 평화라는 말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북한을 적으로 간주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하고 북한도 남한에 대한 적의적 표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미사일 등의 무기들을 보란 듯이 시위하고 있다. 한미 훈련 가운데 김정은 참수 훈련을 했다고 일본의 신문에 나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북한은 핵무기의 실험을 다시 하겠다고 시위하듯 이야기한다. 남한에 대한 사진 촬영을 내보이기도 하고 그 수준이 질이 떨어진다는 남한 당국의 야유 섞인 표현이 있자 곧바로 이어서 서울 상공에 드론을 내보내기도 한다. 그것도 남한의 대통령이 있는 서울 용산 상공에까지. 이 정도면 금방이라도 남과 북이 다시 전쟁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1950년 6월 25일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1953년 전쟁을 끝내면서 전쟁을 잠시 쉬자는 휴전 선언을 했다. 전쟁을 이제는 그만하자는 종전선언이 아닌 전쟁을 잠시 쉬자는 휴전선언이다. 이것은 한반도가 여전히 내전 중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전쟁을 다시 하지 않았다. 지난 대통령 때에는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여러 번 의지를 다졌으나 그것마저도 남한과 북한 당사자들의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적자임을 주장하는 남한은 휴전협정의 당사자도 아니다. 휴전협정은 미국과 북한과 중국의 세 나라가 한 것이다. 우리는 당시에 우리의 땅에서 전 국토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고 온 국민이 그 폐해의 당사자가 되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싸웠음에도 우리는 전쟁을 계속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우리나라는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우리나라의 뒤에 있는 강대국의 의지에 우리나라가 따라야 하는 것처럼 현실이 읽힌다. 특히 남한에서는 미국의 견해가 절대적인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도 현실은 다시 남한과 북한이 이토록 적대 감정을 높여서 말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상대를 다시 공격하여 전쟁할 것 같은 심히 험악한 분위기까지 몰아가는 것 같다.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현재 남한과 북한은 전쟁해서는 안 된다. 남한과 북한이 가진 무기만으로도 전 국토를 초토화시킬 수 있고 한반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도 남을 것이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다시 해서 온 민족이 공멸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떠한 사상을 가졌건, 그가 어떠한 명분으로 그런 생각을 했건 온 민족의 적이다.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최악이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의 평화보다도 나쁜 것이다. 전쟁을 한다면 반드시 이겨야겠지만 이기기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지금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보라. 사람들이 지상에 수십 년간 공들여 만든 문명을 하루아침에 다 파괴시켜 버릴 수 있는 것이 전쟁이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죽이고도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 전쟁이다. 인간으로서는 해서 안 되는 온갖 불법의 행위가 이루어져도 정당화되는 것이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잘못이다. 러시아의 지도자 푸틴은 어떠한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그러나 러시아에 비해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도 전쟁을 피하지 못한 것은 외교적인 잘못이다. 다소 굴욕적이고 양보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온 국토를 온전히 유지하고 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그 길을 선택해야 하지 않았을까. 우크라이나의 의지로 우크라이나가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기를 수 있을 때까지 다소 굴욕적이더라도 러시아와 협상을 하면서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이 전쟁을 보면 러시아도 많은 병사들이 죽고 전쟁무기가 파괴되고 엄청난 전쟁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전쟁터는 우크라이나 안에서만 치러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은 러시아 땅에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전쟁이다. 러시아는 국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고 있다. 거기에 비해 우크라이나는 온 국토가 피폐해지고 온갖 문명들이 엄청나게 파괴되었다. 무수한 민간인들이 죽고 생존의 터를 떠나 피난살이를 하고 있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피난 가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무수한 사람들이 가족들이 죽고 이웃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 살아있는 현재도 공포 속에 지내고 있다. 이런 불공정한 전쟁이 지금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과를 보면 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불해야 하는 전쟁의 대가는 평화로 가면서 지불해야 했던 어떤 대가보다 훨씬 더 큰 것이 되어 버렸다.

전 정권인 문재인 정부에서는 남과 북이 평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했다. 그리고 북미회담도 했다. 이런 것들이 평화를 위한 노력이라면 다소 연출한 것도 많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한이 볼 때 북한의 행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참으면서 대화의 장으로 끌고 나왔다. 그 인내를 어떤 사람들은 굴욕적이라고 하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판단하면 그것을 위선적인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속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다 말할 수는 없다. 좋은 것은 말하고 나쁜 것을 숨긴다. 거기에 비해 현재의 윤석열 정권은 북한에 대해 필요 이상의 적의감을 드러낸다. 북한이 감정을 상할 수 있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자극하여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북한이 반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쓴다. 위악적인 적의감이라고 할 수 있다. 남과 북이 왜 이렇게 할까. 그 이면에는 정치적인 공학이 깔려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김정은 정권이 북한 주민에게 비판받을 수 있는 요인들을 남북의 대결의식 강화로 그것을 묻어버릴 수 있고 남한은 남한대로 대통령의 떨어진 지지율을 보수 집결로 어느 정도까지는 끌어올리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많은 부분이 남과 북에 대한 실질적인 대결의식보다 북한은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보여주기식의 과시 행위로 보이고 남한은 남한 정권이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식 과시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위악적인 행위가 감정적인 절제력을 순간적으로 상실하면 순식간에 적대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

현재의 남북관계를 보면 전 정권이 위선적인 평화라면 현 정권은 위악적인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추구하는 목표는 남과 북의 평화로운 현상의 유지이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방법은 정반대의 접근이다. 우리는 이웃끼리 질서를 유지하면서 지내는 방법에서 이를 비교해 보자. 이웃하는 두 집이 생활방식이 서로 많이 달라서 갈등을 일으킬 요인이 많지만 서로를 지켜내는 방법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서로 좋은 말만 하고 사이 좋은 척 하면서 지내는 것과 그 갈등의 요인들을 다 드러내면서 으르릉거리며 지내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피로감이 더 적고 더 좋아 보일까. 생각과 생활환경이 완전히 다른 두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룬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서 갈등할 수 있는 요인들이 많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좋은 점을 칭찬만 하고 살아가는 것과 차이점들을 들추어내어 서로 으르릉거리며 다투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부가 있다면 주변에서는 그 집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현재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어떤 상태로 지내는 것이 바람직할까. 남한과 북한은 한 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역사적으로 하나의 나라였다. 통일은 당장 필요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쉽지 않다. 통일을 위한 노력은 끝없이 하되 그것은 우리 민족의 하나의 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전쟁으로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고 온 민족의 적이다. 사실 지난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전쟁도 그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영원히 민족적 비판을 받아야 한다. 남과 북의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시의 온 민족의 상처는 너무나 컸다. 생명과 재산상의 피해는 물론이고 남과 북이 이처럼 회복하기 힘든 갈등의 상처를 만들었다. 너무나 많은 민족적 손실을 가져왔다. 다시 여기서 전쟁을 하겠다는 생각은 온 민족을 공멸로 몰아가겠다는 생각이다. 정치적 이해득실에서 전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지도자가 있다면 우리는 정치계에서 그를 영원히 추방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은 현실적으로 평화를 지속하면서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자연스럽게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찾을 때까지 우리는 통일을 유보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평화를 지속하는데 우리는 위선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가 위악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서로가 전쟁을 억지할 수 있는 정도의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위선적인 자세로 평화로운 척하면서 남과 북이 교류도 하고 물자도 나누며 사는 것이 더 나을까. 체제 경쟁을 내세워 으르릉거리며 서로 공갈로 위협하며 자신의 힘을 시위하고자 남북의 갈등을 치유할 수 없는 척하면서 악의적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지내는 것이 더 바람직할까. 이 위악적인 모습들이 서로 국내의 체제 안정을 위한 내부적인 필요성에 의한 행위지만 그것이 혹시나 순간적인 감정의 절제력 상실로 우발적인 싸움을 가져올 수 있지는 않을까. 국민들은 전쟁에 대한 불안을 버리고 보다 더 마음 놓고 평화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한다.

 

참고 : 상기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는 무관합니다.

 

정대호 시인, 문학평론가

 

<정대호 시인, 문학평론가>

1958년 청송군 진보면 부곡리 출생

부곡초등학교 18회, 진성중학교 8회 졸업

대건고등학교 26회 졸업, 경북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4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활동

시집 : 다시 봄을 위하여(1985년), 겨울 산을 오르며(1994년), 지상의 아름다운 사랑(2000년), 어둠의 축복(2008년), 마네킹도 옷을 갈아입는다(2016년), 가끔은 길이 없어도 가야 할 때가 있다(2020년)

평론집 : 작가의식과 현실(1997년), 세계화 시대의 지역문학(2002년), 현실의 눈, 작가의 눈(2004년)

산문집 : 원이의 하루(2015년)

계간 ‘사람의 문학’ 발행인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광역시 지회장 역임

대구 이육사기념사업회 상임 대표 역임

10월 문학제 위원장

사단법인 10월 항쟁 유족회 한국전쟁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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