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송에서 띄우는 편지(3) (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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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송에서 띄우는 편지(3) (박월수 수필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3.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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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는 마흔 후반의 총각입니다. 몸집이 자그마한 그는 노모와 둘이서 농사를 지으며 삽니다.

올해도 그는 예년처럼 마디 호박을 심었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호박 값이 갈수록 내리더니 급기야 바닥을 쳤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호박밭 앞을 지나던 남편이 J씨에게 한마디 던졌습니다. 이제 제발 호박 농사는 접으라고요. 뚝심으로 사는 그 남자는 호기롭게 맞받아 쳤습니다. 이번 호박 다 따고 나면 또 심을 거라고요. 마땅히 심을 작물도 없을뿐더러 땅을 놀릴 수는 더더욱 없다고요.

그는 벌도 키우고 배추 농사며 콩 농사 온갖 밭작물은 다 합니다. 그런 그가 기어코 멀쩡한 호박밭을 갈아엎었습니다. 호박 금이 영 올라갈 낌새를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 무렵은 장마 끝이어서 습도며 기온이 엄청 높았습니다. 불쾌하기 그지없는 날씨에 그는 혼자서 늦게까지 호박밭 갈아엎는 일을 마쳤습니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한 남편이 새벽에 마당에 나갔다가 그의 밭두렁에 세워진 차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며칠 뒤, 그의 호박밭을 지나던 남편이 또 그를 보았습니다. 그는 갈아 엎어놓은 밭에서 몇몇 뒹구는 호박을 줍고 있었습니다. 그걸 왜 줍느냐고 묻는 남편에게 그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답니다. 갑자기 호박 값이 몇 배나 올랐다고요.

차마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 눈길을 피하는 남편을 향해 그가 또 외쳤답니다.

“형님, 나는 우째 이래 복이 없는지 모리겠니더.”

그 말을 전해 듣는 제가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려는 통에 겨우 참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한번 씩 J씨를 집에 불러 식사를 함께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 눈에 띄는 건 그의 몸집만큼이나 작은 손입니다. 굳은살 투성이 작은 손은 형편없이 거칠어서 누가 봐도 연애하고 싶어지는 손은 아닙니다. 그런 정도로 일을 하는 사람이니 그의 성실함은 부근에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일중독인 그도 가끔 쉴 때가 있습니다. 다방 커피를 부를 때입니다. 아가씨 만나기가 별똥별 보기보다 어려운 이곳 시골에서 그나마 곱게 치장한 여자와 말이라도 섞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지요.

몇 해 전 온 나라에 바이러스가 퍼져 토종벌이 폐사했을 때 그도 키우던 벌을 모두 잃었습니다. 상당한 손실이었지만 그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형님의 보증을 서서 가진 것 전부를 날리고 빚더미에 올라앉았을 때에도 그는 씩씩하게 버텼습니다. 형님에 대한 원망 한마디 없었다지요. 하지만 혼자라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는 언젠가 저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하더군요.

“형수요, 장가 좀 보내주소.”

늙은 총각이 쑥스러워 죽겠다는 듯, 그보다 외로운 건 더 힘들다는 듯 보였습니다.

어느 날 어스름 녘에 보니 그는 또 마디 호박을 심고 있었습니다. 올해 세 번째 심는 호박 농사입니다. 이번에 심은 호박은 값을 잘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을배추며 콩 농사도 물론이고요.

아무리 봐도 상남자인 J씨가 올해 농사 잘 지어서 그를 알아보는 눈 밝은 처자를 만나 알콩달콩 잘 살길 빌어봅니다.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작가 소개>

1966년 대구 월배 출생

2005년 수필문학 초회 추천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달’로 등단

2009년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젊은수필 2012’, ‘현대수필 100년’, ‘더수필 2019’, ‘더수필 2020’에 작품 수록

2021년 수필집 『숨, 들이다』 출간

매일신문 매일춘추와 대구일보 에세이마당, 사단법인 경북북부권 문화정보화지 ‘컬처라인’ 필진을 거쳐 현재 대구경북일보 오피니언 필진을 하고 있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경북문인협회, 안동교구가톨릭문인회, 수필세계작가 회원.

현재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청송문인협회 부회장, ‘청송문학’ 편집장, 청송 ‘시를 읽자’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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