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송에서 띄우는 편지(2) (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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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송에서 띄우는 편지(2) (박월수 수필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3.29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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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남편은 자두밭에 약을 치러 다녀왔습니다. 자두밭은 옆집과 붙어 있지요. 그런데 남편이 축 처진 목소리로 우울한 소식을 전합니다. 옆집에 초상이 났다고요. 노부부가 곡 하는 걸 보고 오는 길이랍니다. 마당귀에 핀 자귀나무 꽃술에 코를 박고 은은한 분향에 취해있던 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듭니다. 어쩐지 부고를 전하는 그의 얼굴빛이 수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옆집엔 노부부 외엔 딸린 식구가 없거든요. 옆구릴 찔러가며 추궁을 하니 그제야 짓궂은 남편은 실토를 합니다.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고요.

칠순에 접어든 옆집 아저씨는 새벽마다 산책을 합니다. 거랑 둑길을 따라 자그마한 체구의 아저씨가 걸어가면 목줄을 하지 않은 복실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가지요. 우리 집 거실 창으로 빤히 보이는 그 광경은 너무나 다정해서 저는 수시로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습니다. 오늘도 복실이와 함께 산책을 다녀왔다는데요. 목줄을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요. 산책로 어디쯤에서 무얼 주워 먹었는지 집엘 왔더니 숨이 넘어가더라고 합니다. 안주인이 그걸 보고는 꺽꺽 울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강아지도 식구인 걸 저는 깜박했습니다.

죽은 복실이도 안 됐지만 옆집 안주인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짠해집니다. 아름다운 은발의 그녀는 올해 일흔 중반의 서울댁입니다. 열일곱 해 동안이나 애지중지 하던 강아지를 잃고 힘들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제게 울먹이며 들려줬었지요. 이리로 이사 오면서 새록새록 다시 정들인 강아지를 잃었으니 그 맘을 어찌 추스를 수 있을까요. 복실이가 그리 되도록 빌미를 제공한 아저씨는 또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을까요. ‘여보, 복실이 밥그릇도 같이 묻어줄까’ 하고 물어봤다가 아저씨는 안주인한테 나무람을 들었답니다. 누구보다 다정한 옆집 부부가 한동안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슬픔에 빠진 안주인을 위로해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들이 휴가를 나오는 날이어서 마음이 바쁩니다. 집안 정리와 먹거리를 장만해 놓고 안동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마중도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건 다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슬픔에 빠진 노부부를 바라볼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집안 정리를 하다 말고 뜰에 핀 금잔화 두어 송이를 옹기 화분에 옮겨 심습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집을 나섭니다. 낮에 심은 금잔화 화분과 냉장고에 있던 달콤한 케이크도 챙겼습니다. 예쁜 꽃과 달콤한 맛은 슬픔을 위로하기엔 더없이 좋다는 걸 저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만치 보이는 옆집 불빛이 조등을 단 듯 처량하게 보입니다. 지난 늦봄 붉게 익은 앵두나무 아래서 컹컹 짖던 복실이가 금방이라도 다시 뛰어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옆집 코앞에 다가가도 고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니 열린 창문으로 때 아닌 음악소리만 크게 새어 나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거실 장 앞에 웅크려 오디오 볼륨을 한껏 높이고 음악에 취해 있는 은발 여인의 굽은 등이 보입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뒷모습이 꼭 저렇지 싶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식사는 하셨느냐 묻는 제게 눈물 많은 그녀는 또 울먹입니다. 심장이 약하다는 그녀를 위해 저는 얼른 화제를 바꿉니다. 여기 오는 길에 있는 묵정밭에 개망초꽃이 가득 피었는데 그 향기가 어찌나 감미로운지 길을 잃을 뻔했노라 고요. 이 금잔화도 빛깔이 고와서 창가에 놓아두고 즐기기에 좋을 거라고 말해줍니다. 케이크 접시를 꺼내 놓으며 노부부에게 번갈아 권합니다. 달콤함은 슬픔을 위무하는 위대한 힘이 있다는 말과 함께요.

이런저런 그녀의 푸념을 들어주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달콤함이 주는 힘일까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찾아와주는 말동무가 있어서일까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은발의 그녀가 털고 일어나 저를 배웅하러 나섭니다. 남편의 농담처럼 모레 삼오 날에는 그녀와 함께 막걸리라도 사 들고 복실이 무덤에 다녀와야겠습니다.

 

 

<박월수 작가 소개>

1966년 대구 월배 출생

2005년 수필문학 초회 추천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달’로 등단

2009년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젊은수필 2012’, ‘현대수필 100년’, ‘더수필 2019’, ‘더수필 2020’에 작품 수록

2021년 수필집 『숨, 들이다』 출간

매일신문 매일춘추와 대구일보 에세이마당, 사단법인 경북북부권 문화정보화지 ‘컬처라인’ 필진을 거쳐 현재 대구경북일보 오피니언 필진을 하고 있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경북문인협회, 안동교구가톨릭문인회, 수필세계작가 회원.

현재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청송문인협회 부회장, ‘청송문학’ 편집장, 청송 ‘시를 읽자’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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