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송에서 띄우는 편지(1) (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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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송에서 띄우는 편지(1) (박월수 수필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3.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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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을 지나는 바람이 나긋합니다. 개울물 소리는 연인의 귀엣말처럼 감미롭게 들립니다. 물속에 잠긴 달풀도 이제 더는 발이 시리지 않아 보입니다.

겨우내 비어있던 개울가 빈집에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서울 아들네로 가셨던 구순의 어르신이 시골 봄볕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밤에도 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제 곧 기역자로 굽은 허리를 하고 지난봄처럼 나물을 캐느라 앞들을 누비실 테지요.

나는 개울로 내려가 아이처럼 물수제비를 뜹니다. 점점이 번지는 동그라미를 세는 일이 재미납니다. 징검다리에 버티고 서서 꼼짝도 않던 우리 집 강아지 송이가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수초 사이를 노닐던 버들치 무리 때문인가 봅니다. 가만 들여다보니 맑은 물아래엔 손톱만 한 다슬기도 제법 누웠습니다.

개울 주변으로 가지치기가 끝난 사과나무가 단정하게 봄을 맞습니다. 고운 꽃눈 속엔 푸진 결실을 바라는 과수원지기의 소망을 속속들이 껴안았을 테지요. 나긋한 바람결에 사과나무 물오르는 소리 들립니다.

큰길 쪽에 경운기가 지나갑니다. 동네 어르신 내외분이 앞뒤로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읍내 푸른 미장원엘 다녀오시는지 까만 염색머리에 꼬불거리는 파마도 했습니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할아버지는 습관처럼 다방엘 들르셨겠지요. 삼거리 다방 짧은 치마 입은 다방종업원을 앉혀놓고 쌍화차라도 한 잔 드셨을 게 분명합니다. 털털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경쾌합니다.

둑 위에 서서 개울을 내려다봅니다. 지난밤 쏟아질 듯 퍼부어놓았던 별의 행방을 알 것도 같습니다. 낮별이 빠져 노는 개울은 눈이 부십니다. 찰방찰방 몸 헹군 별은 하늘로 올라가 어제처럼 맑게 빛나겠지요.

청송 골짜기에 찾아든 봄은 이렇듯 곱고 향기롭게 번집니다.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작가 소개>

1966년 대구 월배 출생

2005년 수필문학 초회 추천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달’로 등단

2009년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젊은수필 2012’, ‘현대수필 100년’, ‘더수필 2019’, ‘더수필 2020’에 작품 수록

2021년 수필집 『숨, 들이다』 출간

매일신문 매일춘추와 대구일보 에세이마당, 사단법인 경북북부권 문화정보화지 ‘컬처라인’ 필진을 거쳐 현재 대구경북일보 오피니언 필진을 하고 있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경북문인협회, 안동교구가톨릭문인회, 수필세계작가 회원.

현재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청송문인협회 부회장, ‘청송문학’ 편집장, 청송 ‘시를 읽자’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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