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태 수필, 청송에서 쓰는 편지 3 ‘삵’ (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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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생태 수필, 청송에서 쓰는 편지 3 ‘삵’ (박월수 수필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3.2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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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박월수

 

우리 집 닭장이 습격을 당했다. 몇 년째 키우던 묵은닭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줄초상을 맞았다. 게 중에서도 수탉은 이웃에서도 탐을 낼만큼 훤칠한 미모에 용맹함도 갖췄었다. 지난여름 겁 없이 들어왔던 뱀을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 물리치기도 했다. 그런 수탉도 꼼짝없이 당했다. 닭장 울타리에 작은 구멍이 난 걸 보니 의심 가는 놈이 하나 있다. 녀석은 대낮에도 닭장 앞에 왔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후다닥 도망갔었다. 그 녀석이 분명하다. 닭장 옆을 지키던 진돗개가 사라지고 나서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던 모양이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 집은 오백여 평의 너른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을 제하고도 노는 공터가 꽤 된다. 따로 작물을 심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여름엔 개망초꽃의 터전이 되곤 해서 곁을 지날 때면 은은한 향기에 길을 잃을 정도다. 그 끄트머리에 닭장이 있다. 닭장 옆으로는 마른 계곡 너머 울창한 숲이 있는데 아름드리 적송이 주를 이룬다. 뒷산은 은사시나무숲이다. 바람 많은 날이면 은사시 나뭇잎의 수다를 듣는 재미가 좋다. 산속엔 고라니며 멧돼지, 담비 따위 온갖 짐승이 산다. 밤하늘에 촘촘하게 뜬 별을 구경하노라면 뒷산에서 들리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우곤 한다.

시골에 집을 지은 다음 서둘러한 일은 닭장을 지은 것이다. 음식물 찌꺼기 처리를 위해서는 시급한 문제였다. 맛있는 달걀을 먹고 싶은 이유도 한몫했다. 유기농 달걀은 생으로 먹어도 희한하게 비린 맛이 나지 않았다. 끼니때마다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닭이 해결해주니 어쩐지 뿌듯하기도 했다. 죄짓지 않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닭은 추운 겨울을 제하곤 착실하게 알도 낳아주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게으른 나는 음식 찌꺼기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겨울엔 닭장을 자주 가지 않았다. 달걀도 꺼내올 게 없으니 더 그랬다. 사료와 물을 듬뿍 가져다주고는 모른 체 방관했다. 삵이란 놈이 마음 놓고 울타리를 망치기에 충분한 시간을 준 것이다.

흩어진 날개만 남은 빈 닭장에서 삵이란 놈을 생각한다. 처음 녀석과 마주쳤을 때 나는 까무룩 넘어갈 것처럼 놀랐다. 매섭게 반짝이는 눈과 일어선 몸의 털이 야생의 발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번개같이 도망가긴 했지만, 다시 오리란 걸 예감했다. 그런데도 그놈이 밉지 않은 건 왜일까. 너무나 잘생긴 녀석의 외모 때문일까. 아니다. 아직 자연이 살아있다는 것이 적이 안심이 되는 탓이다. 실제로 녀석을 보았다는 것이 내겐 행운처럼 여겨진다. 정든 닭을 잃긴 했지만 녀석에게 보시했다 생각하니 그리 아깝지 않다. 그나저나 앞으로 음식찌꺼기를 어찌 처리할까 심히 고민이다. 봄이 되면 낡은 닭장을 수리하고 햇닭을 들여놓아야 할까 보다. 지구를 위한 나의 작은 실천을 이어가야 하니까.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작가 소개>

1966년 대구 월배 출생

2005년 수필문학 초회 추천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달’로 등단

2009년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젊은수필 2012’, ‘현대수필 100년’, ‘더수필 2019’, ‘더수필 2020’에 작품 수록

2021년 수필집 『숨, 들이다』 출간

매일신문 매일춘추와 대구일보 에세이마당, 사단법인 경북북부권 문화정보화지 ‘컬처라인’ 필진을 거쳐 현재 대구경북일보 오피니언 필진을 하고 있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경북문인협회, 안동교구가톨릭문인회, 수필세계작가 회원.

현재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청송문인협회 부회장, ‘청송문학’ 편집장, 청송 ‘시를 읽자’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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