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태 수필, 청송에서 쓰는 편지 2 ‘사과 농사’ (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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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생태 수필, 청송에서 쓰는 편지 2 ‘사과 농사’ (박월수 수필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3.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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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농사/박월수

 

사과는 이 지역 대표 농산물이다. 어딜 가나 넓은 과수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 지방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사과와 함께한다. 지역의 가장 큰 축제는 사과 축제이며 문인협회에서 하는 글쓰기 대회는 사과 백일장이다. 두 행사의 주인공은 당연히 사과다. 버스정류장도 빨간 사과 모양이다. 그곳 벤치에 옹기종기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어르신들 역시 사과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동네를 통과하는 다리엔 어김없이 사과 모양의 대리석 장식이 얹혀있다. 그 다리 아래에서 농사에 지친 사람들이 피로를 식힌다. 지자체에서는 해마다 사과 농가에 앞선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훌륭한 교수진을 꾸려 사과 대학을 운영한다. 튼실한 열매를 위해 드론을 띄워 꽃가루를 뿌리는 수고도 마다치 않는다. 이렇듯 사과에 기울이는 정성 또한 유난하다.

나는 가끔 사과 무침을 상 위에 올린다. 이 지방에선 흔하게 먹는 음식이다. 사과를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갖은양념에 버무리면 바로 먹을 수 있다. 농가마다 저농약 농법을 쓰는 덕택에 껍질째 요리하니 만들기도 간단하다. 사과 무침은 무 깍두기와는 다른 아삭함에 새콤달콤한 맛과 향도 지녔다. 그 상큼한 음식을 먹고 있으면 농부의 수고로움에 저절로 마음이 가닿는다.

마당 건너 들판 과수원을 넘겨다본다. 가지가 부러져라 매달았던 열매를 내려놓고 나무는 휴지기에 들었다. 빈 몸이 된 나무가 그렇게 홀가분해 보일 수가 없다. 내 맘마저 편안해지려는데 멀리 찬바람을 맞으며 사과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는 농부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쉬는 계절이란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아내들은 지금쯤 집안에서 사과 택배 작업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심각한 바이러스의 원인이 지구오염 때문이란 걸 알고부터 사는 일이 삭막해졌다.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죄짓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내가 탐스럽고 굵은 사과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지구가 그만큼 몸살을 덜 앓아도 된다는 걸 아는 탓이다. 색이 곱고 굵은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 농부는 많은 시간을 과수원에서 보낸다. 사과가 빨갛게 익을 무렵이 되면 미리 사과 주변의 잎을 따준다. 그러고도 모자라 나무 아래 바닥에 은박 필름을 깐다. 햇빛이 닿지 않는 사과의 밑동에도 붉은색을 내기 위한 방법이다. 사과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푸른빛이 보이면 상인으로부터 값을 덜 받기 때문이다.

과일의 빛깔을 위해 품을 구하는 일은 전쟁처럼 치러진다. 같은 시기에 열매가 익으니 우리 집에 일손이 필요하면 남의 집에도 일손이 필요하다. 잎 소제 때마다 농민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구나 잎 소제는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니다. 서투른 품꾼들은 사과나무의 잎을 훑으면서 미리 온 꽃눈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흔하다. 은박지 설치 작업이 가장 큰 난관이며 오염원이다. 과수원 바닥을 기다시피 해서 깔아야 하므로 누구나 꺼리는 일이다. 은박지는 재활용도 되지 않는다. 사과를 따기 전에 걷어서 버리고 다음 해에는 또다시 새로운 은박지를 깐다. 거기에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이렇게 버려지는 양이 얼마나 될까. 전국의 과수농가가 엄청나니 감히 상상이 안 된다.

코로나가 오기 전 유럽 몇 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다. 가는 곳마다 과일 마켓을 빠지지 않고 들렀다. 과수원지기답게 그 나라의 사과는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작고 못생긴 사과들뿐이었다. 우리 지방의 잘 생긴 사과를 생각하며 어깨에 힘이 마구 들어갔다. 숙소의 식탁에 올라온 사과를 깨물어 보았을 땐 남은 기대마저 사라졌다. 푸석하니 식감마저 영 아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생태환경을 위해 유기농을 중시한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지구의 건강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아직 대부분 사람들이 눈과 입이 즐거운 미식을 추구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청송은 고지대에 위치한 까닭에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다. 그런 덕분에 사과의 육질은 단단하고 저장성은 뛰어나다. 추위에 견디는 일이 몸에 밴 사과는 그 달콤함을 안으로 농축해서 꿀사과란 별명을 얻었다. 밑동이 살짝 푸르다고 맛에 차이는 없다는 것이 대부분 농가의 생각이다. 은박지 까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더 싼 값에 사과를 먹을 수 있다. 해마다 마을 어귀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은박지를 떠올리면 색이 탐스러운 사과를 고집하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하는 이들의 눈에는 야만인으로 비칠 수도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들여온 잘못된 문화를 이제는 버려야 할 때다. 농가 스스로 은박지 설치 작업을 그만둔다면 해결될 일이다. 아픈 지구를 위해 우리 농민이 용기를 내야 한다.

때마침 청송지역에서는 은박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품종 하나를 찾았다. 황금 사과가 그 주인공이다. 신화에서 황금 사과의 이미지는 본래의 힘이다. 생명을 주고 병을 고치는 역할이다. 황금사과 무침을 먹으면 당장에라도 젊어질 것 같은 위안이 든다. 황금 사과를 재배하면 농가의 수고도 덜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 빛깔을 내기 위해 잎 소제를 하거나 은박지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 자연의 빛 그대로 두어도 충분한 빛깔과 맛을 낸다.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산소 카페 청송만의 트렌드로 지역민이 다투어 수확하고 있다. 다만 사과는 붉은 빛깔이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이에겐 당해낼 재간이 없다. 어떤 빛깔의 사과를 먹을 것인지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수필가 소개>

1966년 대구 월배 출생

2005년 수필문학 초회 추천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달’로 등단

2009년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젊은수필 2012’, ‘현대수필 100년’, ‘더수필 2019’, ‘더수필 2020’에 작품 수록

2021년 수필집 『숨, 들이다』 출간

매일신문 매일춘추와 대구일보 에세이마당, 사단법인 경북북부권 문화정보화지 ‘컬처라인’ 필진을 거쳐 현재 대구경북일보 오피니언 필진을 하고 있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경북문인협회, 안동교구가톨릭문인회, 수필세계작가 회원.

현재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청송문인협회 부회장, ‘청송문학’ 편집장, 청송 ‘시를 읽자’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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