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태 수필, 청송에서 쓰는 편지 1 ‘굴뚝’ (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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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생태 수필, 청송에서 쓰는 편지 1 ‘굴뚝’ (박월수 수필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3.22 03: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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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박월수

 

이곳 청송 산골은 공장 굴뚝이 없다. 조상들이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 대부분 땅에 기대어 산다.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려면 기업유치에 나서야 하지만 아득한 딜레마에 휩싸여 헤매지 않는다. 굴뚝에 연기 나는 제조업은 애초에 들여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산품이라야 사과즙을 생산하는 공장 정도다. 나라 안에서 산소농도가 가장 짙은 곳으로 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의 생태를 지키고 사라져 가는 것을 보존하는 것은 지역민 모두의 책임이라 여긴다.

십여 년 전 이 지방은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면적의 80%가 산지인 까닭에 산촌형 슬로시티에 속한다. 상주~영덕 고속도로가 통과하기 전까지 영천과 연결된 노귀재, 포항과 경계를 이룬 꼭두방재, 안동과의 사이에 가랫재, 영덕에서 오는 황장재 등 높은 재 하나는 넘어야 이 지방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청송은 비밀의 낙원 혹은 신선의 고장으로 통했다. 육지의 섬처럼 신비로운 곳에서 하등 바쁠 것 없는 사람들이 산속의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느긋하게 살아간다.

이 깊은 산골에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느림보 마을에서 제대로 된 쉼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조용히 찾아온다. 고택 체험에 나선 이들은 소슬 마을의 정겨운 돌담과 오래된 기와지붕 아래서 밤하늘의 빼곡한 별을 바라보며 넘치는 감흥에 흠뻑 젖는다. 아흔아홉 칸 고택 마당에서 떡메 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지역의 천연자원인 도석을 갈아 만든 청송 백자와 흙 묻은 거친 손으로 전통옹기를 빚는 옹기 장인의 숨결도 만난다. 신라 때부터 제지 마을이었다는 청송 한지마을에서 닥나무가 종이로 변하는 과정을 차분히 음미한다. 달기약수로 만든 백숙과 갖가지 산채 장아찌는 기다림이 원료인 슬로푸드다. 김주영 객주 길을 걸으며 사백 년 묵은 느티나무의 품에서 포근한 위로를 받는다.

더러는 유네스코 세계 지질유산을 둘러보며 수억 년 전 지구를 상상하는 재미를 맛본다. 바위와 폭포를 품은 주왕산은 온갖 지질의 전시장이다. 좁은 협곡에 위치한 용추폭포를 지날 땐 영원의 처소로 드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옥색 물빛을 보며 맨발로 걸어도 맞춤할 만큼 완만해서 더욱 좋다. 신의 보석 상자를 닮은 바위가 가득한 원시림, 절골 계곡과 별 바위가 낳은 주산지도 빼놓을 수 없다. 그곳엔 수백 년 멱을 감는 왕버들이 산다. 달의 바깥에 있는 월외 폭포에서 승천한 용의 전설을 들으며 달구경을 한다. 길안천 상류의 공룡발자국과 붉은 덤을 지나 하얀 돌이 반짝이는 여울, 백석탄에 마음을 뺏긴다. 이 모두가 굴뚝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덕분이다.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수필가 소개>

1966년 대구 월배 출생

2005년 수필문학 초회 추천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달’로 등단

2009년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젊은수필 2012’, ‘현대수필 100년’, ‘더수필 2019’, ‘더수필 2020’에 작품 수록

2021년 수필집 『숨, 들이다』 출간

매일신문 매일춘추와 대구일보 에세이마당, 사단법인 경북북부권 문화정보화지 ‘컬처라인’ 필진을 거쳐 현재 대구경북일보 오피니언 필진을 하고 있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경북문인협회, 안동교구가톨릭문인회, 수필세계작가 회원.

현재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청송문인협회 부회장, ‘청송문학’ 편집장, 청송 ‘시를 읽자’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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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균 2022-03-22 09:47:08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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