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짧은 소설17] 노인은 달을 보고 있지 않았다. (박명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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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짧은 소설17] 노인은 달을 보고 있지 않았다. (박명호 소설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2.28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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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달을 보고 있지 않았다./박명호 소설가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아파트 쉼터로 갔다.

반달이 참 정겹게도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달 쪽으로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다가 인기척에 뒤돌아보았다.

한 노인이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저 노인도 달을 보고 있구나! 제법 낭만적이네...

나는 그 노인을 알고 있다. 어쩌다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그를 보는 정도였는데 얼마 전 뜻밖에 꿈에서 그 노인을 만났었다. 나는 노인을 따라 오래 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침침한 긴 복도와 높은 천정, 그리고 적막한 방에는 소파가 하나 외롭게 놓여 있었고, 그 소파에 헌 옷가지 걸쳐 놓은 것 같은, 아니 영혼이 다 빠져나가버린 뱀허물 같은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가 내가 따라온 그 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노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낡고 오래된 백 년의 고독 같은 적막한 분위기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건들면 풀썩 먼지로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창으로는 햇살이 반쯤 넘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노인의 얼굴은 뚜렷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친근감이 갔다. 혹시 내가 아닐까...하다가 깨어났다.

그 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달은 아파트 옥상 쪽으로 기울었다. 배가 고픈지 짝을 찾는지 들고양이 울음이 요란했다. 나는 일어났다. 돌아오면서 노인 쪽을 봤다. 아, 노인은 달을 보고 있지 않았다. 노인은 달을 등지고 어둠 속에 그냥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그때 꿈속의 모습처럼 그렇게 어둠 속에 있었다.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누웠으나 여전히 잠을 이울 수가 없었다. 백 년의 고독 같은 노인의 잔상도 잔상이지만 때맞춰 울어대는 들고양이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 소설가 약력>

1955년 청송군 현서면 구산동 출생

화목초등학교 44회 졸업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장편소설/가롯의 창세기 등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꾸기 뿔 등

산문집/ 촌놈과 상놈, 만주 일기 등

크리스천신문 신인문예상, 부산 MBC 신인문예상

부산작가상, 부산 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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