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짧은 소설14] 돈돈3 - 스트라이크 (박명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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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짧은 소설14] 돈돈3 - 스트라이크 (박명호 소설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2.07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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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3 - 스트라이크/박명호

 

 

인생은 투수가 던지는 공과 같다. 세상 살아가는 방법은 커브도 있고, 직구도 있고, 때로는 사사구도 있다.

오늘 저녁은 북경각에서 짬뽕!

하교 뒤 하숙집 들르지 말고 바로 집합!

아침에 사발통문이 돌았다. 하숙생 단합대회인 줄 알았다. 내가 처음 그 집으로 하숙을 온 지 두 달이 갓 지났다. 내가 올 때 환영회 겸 단합대회를 했으니 그 집의 하숙생 전통은 좀 별나다는 생각을 했다. 하숙생 구성원들도 내가 다니는 학교보다 이웃 K고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Y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하숙방에서였다. 그는 매사가 분명했고, 행동이나 선택에서 주저함이 없었다. 그 집에 하숙생들은 모두 여섯이었는데 나를 뺀 나머지는 모두 Y네 학교 후배들이었다. 이를테면 그는 그들에게 하늘같은 선배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들에 비해서 늦게 그 하숙집에 들게 된 내가 한 달을 갓 넘겼을까 하숙비가 갑자기 절반이나 뛰었다. Y는 단합대회가 있다며 그날 저녁 하교길에 집에 들르지 말고 곧장 중국집으로 집합하라고 했다.

나는 학교를 파하고 조금 늦게 그곳으로 갔다. 하숙생들은 모두 모여 있었고 벌써 짬뽕 한 그릇과 빼갈 잔들이 돌려져 있었다. 하숙비가 너무 올라서 스트라이크를 한다는 것이었다. Y와 나를 뺀 나머지는 대개 지방의 유복한 가정의 자제들이어서 하숙비가 오르건 말건 그렇게 걱정할 처지가 아니고 보면 Y가 주도했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같은 선배의 뜻이고 또한 그 주장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스트라이크에 대한 호기심으로 꽤 진지해 있었다.

자, 우리의 승리를 위해 건배!

짬뽕을 한 그릇씩 말아 올린 우리는 빼갈 잔을 들었다.

가자, 나를 따르라!

곧이어 Y가 오른쪽 주먹을 높이 들었다.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중국집을 나와 큰 길 건너에 있는 하숙집까지 일렬종대로 행진했다.

-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지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빼갈 한 잔의 술기로 군가까지 목청껏 뽑았다. 앞장 선 Y가 노래 마디 사이사이에 구령까지 넣었다.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엇인가 한다는 마음으로 신이 나 있었다. 드디어 집 앞에 다다르자 Y는 대문을 발길로 걷어차며 들어갔다. 노래는 집 마당에 이르러서 더욱 우렁찼다. 밥 때가 되었는데도 하숙생들이 아무도 없자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하숙집 아주머니와 우리 또래의 그 집 딸은 기가 막힌 듯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앞면몰수하고 방으로 곧장 들어가 결의에 찬 자세로 앉았고, Y가 아주머니를 호출했다.

이게 무신 일이고?

아주머니는 여전히 어이없어 했다.

하숙비가 갑자기 이렇게 오를 수가 있습니까?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아나?

그래도 절반씩이나 오른 건 너무 심합니다.

Y가 나름대로 조리 있게 설명한다고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탁탁 쳤다.

어디 이런 경우가 있노! 어른 앞에 버릇이 이게 뭐꼬?

아, 예. 방바닥치는 것은 잘못 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은 뭐시 하지만이야...

거기서 Y는 아니 우리는 역습을 당하고 말았다. 동방예의지국과 인정주의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하숙비가 비싸다면 다른 집으로 하숙을 옮기면 될 일이고, 그렇게 오른 것이 그 집만의 예외가 아니었고 남편 없이 남 집 빌러 하숙이나 쳐 먹고 산다고 너거들한테까지 없신여김을 당한다며 오히려 아주머니가 방바닥을 치며 신세타령을 하는 데야 전세는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우리는 그때까지도 묵묵히 뒷자리에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상황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Y는 아주머니에게 무례한 행동을 거듭 사과하고 아주머니를 위로한 다음 분위기가 많이 수그러들자 차근차근 자기의 주장을 다시 폈다.

아무리 아주머니 말씀이 일리가 있다 해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랐으므로 단계적으로 인상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해서 결국 그 달만 만 사천 원으로 천 원 깎는 데 합의했다. 또한 아침 반찬에 달걀후라이가 추가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날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을 가질 수 있었고 Y는 선배의 건전함을 보여줬다 할 수 있었다.

오른 하숙비에 걱정만 하는 나에 비하면 그는 가난해도 기가 팔팔 살아 있었다. 현실 문제에 피하려는 나에 비해 그는 항상 직구를 날렸다. 그날의 직구는 한가운데 꽉 찬 스트라이크였다.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 소설가 약력>

1955년 청송군 현서면 구산동 출생

화목초등학교 44회 졸업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장편소설/가롯의 창세기 등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꾸기 뿔 등

산문집/ 촌놈과 상놈, 만주 일기 등

크리스천신문 신인문예상, 부산 MBC 신인문예상

부산작가상, 부산 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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