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짧은 소설10] 오감도 烏瞰圖2 -신식구식 (박명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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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짧은 소설10] 오감도 烏瞰圖2 -신식구식 (박명호 소설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1.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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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烏瞰圖 2 -신식구식/박명호

 

 

어둑어둑 작은 산골에 평화 같은 어둠이 내려온다.

사리울타리의 미루나무 키가 한층 커 보인다.

비틀비틀 나귀 타고 장에 갔다 돌아오는 영감은 한 잔 걸쳤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없-는 이- 발-길-”

노래가락 대신에 신식 가요로 흥얼거린다.

미루나무 위 까마귀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영감은 장터 상놈들에게 아직도 나귀나 타고 다닌다고 면박을 받았다. 지난 장에는 갓 쓰고 다닌다며 빈정대던 중절모 신식들과 다투었다. 생각하면 장터 상놈들이 신식이니 뭐니 하며 나대는 꼬라지가 영 꼴불견이지만 그래도 신식 기술들은 편리한 것이 많았다. 그날도 영감은 신식 노래를 배웠으나 한 소절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 귀가길 내내 그것만 반복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었다. 어둠 탓인지 미루나무 까마귀는 보이지 않는다.

영감은 잠자리 들다가 문득 엉뚱한 제안을 한다.

“오늘 장에 가서 신식을 배웠네.”

신식은 서서 한다며 의기양양 마누라를 머리맡 시렁 밑으로 끌었다.

시렁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달려 약간은 불편했다.

둘은 시렁 밑에서 엉성한 포즈를 취하다가 그만 메주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필 그 메주가 잠자던 큰놈 머리에 떨어졌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던 큰놈이 한 마디 걸친다.

“에이 씨-. 그냥 구식으로 하지...”

 

*오감도 烏瞰圖 /조감도에 까마귀 烏를 바꾸어 패러디한 이상의 詩 제목에서 따옴

 

 

 

<박명호 소설가 약력>

 

1955년 청송군 현서면 구산동 출생

화목초등학교 44회 졸업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장편소설/가롯의 창세기 등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꾸기 뿔 등

산문집/ 촌놈과 상놈, 만주 일기 등

크리스천신문 신인문예상, 부산 MBC 신인문예상

부산작가상, 부산 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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