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짧은 소설4] 레드콤플렉스 (박명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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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짧은 소설4] 레드콤플렉스 (박명호 소설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1.11.30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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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콤플렉스/박명호

 

 

한낮 송정 백사장은 쪽빛 바다와 대비되어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그녀가 올까?

M은 그 부질없다는 업소 여자와의 술자리 약속에 이렇듯 기대를 걸고 나온 자신이 영 마뜩치가 않았다. 게다가 서부영화 결투장면처럼 한낮 사방이 확 트인 백사장에서 만나자는 것은 누가 봐도 신빙성이 있는 약속은 아니었다. 그러나 헤어질 때 애절한 눈빛 때문에 속는 셈치고 나온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이 부풀어 올랐다. 저 만큼서 정말 그녀가 거짓말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빨간 치마였다. 아, 순간 아찔한 절망감이 스쳐갔다. 업소 여자티가 확 풍겼다. 하루 사이에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옛 교복 시절 제과점 소녀가 생각났다. 하늘색 제복과 하얀 모자가 너무 잘 어울려 여러 번 제과점을 찾은 끝에 마침내 데이트 약속을 받아냈다. M은 약속한 일요일 잔뜩 마음이 부풀어 공원으로 갔는데 소녀는 빨간 스타킹을 신고 나왔다. 애틋한 소녀에서 촌티 풍기는 종업원 소녀로 바꿔 있었다. 웃는 표정까지 징그러워 견딜 수 없었다. 급하게 핑계를 대고 도망치듯 공원을 빠져나와버렸다.

그녀가 가까이 올수록 치마의 빛깔은 더욱 선명했다. 가녀린 간밤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지극히 현실적인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워지자 빙그레 웃는 표정까지 간밤과는 너무 달랐다. 그 웃음은 M에게 ‘무지개 같은 꿈이 아닌 냉엄한 현실임’을 강요하고 있었다.

도망을 쳐야 했다.

 

 

<박명호 소설가 약력>

1955년 청송군 현서면 구산동 출생

화목초등학교 44회 졸업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장편소설/가롯의 창세기 등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꾸기 뿔 등

산문집/ 촌놈과 상놈, 만주 일기 등

크리스천신문 신인문예상, 부산 MBC 신인문예상

부산작가상, 부산 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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