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오치규 선생과 함께 읽는 이오덕의 시편 (4) 동시를 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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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오치규 선생과 함께 읽는 이오덕의 시편 (4) 동시를 쓰랍니다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12.3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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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이 낳은 문인 교육자 이오덕 선생님의 주옥같은 시편을 함께 읽는 연재입니다.)

 

오치규 작가
오치규 작가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치던 시대의 아이들은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의 아이들은 '일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를 원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숙제도 다 못하고

닭장 문을 열고, 쇠죽을 푸고

심부름 갔다 와서

기성회비를 조르다가

책값을 조르다가

십리 길을 달려왔지만

그만 지각을 하고

벌을 서고

주번생과 한바탕 싸우고

선생님한테 꾸중 듣고

숙제를 못 했다고

또 야단을 맞고

(이오덕 시 '동시를 쓰랍니다' 중에서)

 

아이들은 새벽에 일어나 닭을 돌봐야 했고 쇠죽을 끓여 소를 먹여야 했습니다. 심부름을 다녀야 했고 그래서 숙제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어른처럼 일을 해야 했고 농사의 일부분을 담당해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삶이었지만 물질적인 풍요와는 거리가 먼 고단한 삶이었습니다.

 

크레용이 없어 그림도 못 그리고

급식 빵 한 개 먹고

여섯 시간 공부하고

배는 고픈데

청소는 해야 하는데

다시 십리 길을 찢어진 고무신을 끌고 가야 하는데

핑 도는 머리

어서 찔레라도 꺾어 먹었으면 좋겠는데

(위의 시 중에서)

 

가난한 아이는 십리길이나 걸어 학교를 오갔지만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찔레꽃을 따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던 때가 그리 오래 전이 아니었다는 것은 시골이 고향인 분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도 아니었고 '공부하는 아이들'도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아이들은 '일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일하는 아이들'에게 동심, 아름다운 동심을 강요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며 때로는 폭력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을 불러 놓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동시를 쓰랍니다.

슬프고 답답한 것은 쓰지 말고

신문이나 책에도 내어 주지 않으니 쓰지 말고,

근사한 말을 잘 생각해내어서

예쁜 동시를

보기도 싫은 동시를

또 쓰랍니다.

(위의 시 중에서)

 

선생님은 '일하는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재미있는 동시", "근사한 말", "예쁜 동시"를 쓰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신문이나 책"에 나올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이들은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기대하는 대로의 말을 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자기의 삶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듣기 좋아하는 노래를 하도록 지시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이런 '동심천사주의'에서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자연을 닮은 '천사'가 숨어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우선 자신의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노래해야 합니다. "슬프고 답답한 것"을 우선 내뱉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아이들의 '참모습'이라고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부모와 함께 일을 해야 하고 살아가는 걱정을 그들대로 하는 것이 거의 모든 아이들의 '참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신들의 저열하고 힘든 삶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아이들은 환경에 의해 짓밟히고 소멸된 자기 내부의 '순수정신' 곧 '동심'을 다시 일깨울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동심의 승리'라 주장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교육과 문학'이라 믿었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말씀과 충고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내 기대대로'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게임이 즐거운 아이'를 '공부해야 하는 아이'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30점의 실력을 가진 아이'를 '80점의 실력을 가진 아이'로 기대하고 다그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게임을 하지 않고 공부를 하고 실력이 있는 아이가 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기대'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현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아이들이 자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동심을 계발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은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기다리며 실천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비록 저열한 모습과 현실이지만 그것을 말하고 쓰고 노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노래는 자기 삶과 주변에 대한 관찰이며 반성이며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 정립해 '진정한 자기'가 되든 과정이며 이를 통해 소통하는 과정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늘 중얼거리며 다녔던 '테스형(소크라테스)'이 촉구한 것도 바로 이런 반성과 대화의 삶입니다. 비단 아이들에게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친구를, 가족을, 이웃을 재단하고 그들이 자기의 모습대로 살고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을 억압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의 힘겨운 삶의 노래를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노래만 하도록 억압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동시'만 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자기의 목소리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부르라고, 우리는 그것을 인내하며 들어주라고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치규 선생 약력

청송군 부남면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정일학원 종로학원 강사

2017년부터 가족들과 귀향해 청송에서 교육봉사 및 음식 사업 중

저서: <성적역전 몸공부법>, <다시 개천에서 용나게 하라>, <삼국지 권력술>, <유방의 참모들>, <예수님의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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