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송강습곡, 오래된 주름 (박월수 작가)
상태바
기고 - 송강습곡, 오래된 주름 (박월수 작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11.16 10:0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월수 작가
박월수 작가

 

오전 시간을 한글 문해 교실에서 어르신들과 보냅니다. 여학생 수가 훨씬 많은 문해 교실엔 칠 학년 후반부터 팔 학년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더러는 칠 학년 같은 구 학년 여학생도 있지요. 미래를 꿈꾸기보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더 많은 어르신들입니다. 삶의 이치란 걸 일정 부분 알아버려 어딘가에 닿기 위해 바쁘게 서두를 것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아등바등할 것도 없는 나이입니다. 느긋하고 너그럽습니다. 자신의 걸 뚝 떼어 내어 주는 데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러한 어르신들이지만 이루고자 하는 꼭 한 가지가 있습니다. 글자를 깨치는 것입니다. 평생 까막눈으로 사신 세월이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늦었다고 하면서도 읽고 쓰고 싶어 하시는 열정이 눈물겹습니다. 말로는 못한 얘기들을 손끝으로 들려주고 싶어 하는 맘이 간절합니다. 자식에게 손수 편지글을 써서 전해주고 싶다는 어르신의 작은 소망이 화석처럼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 어제 배운 것들을 자꾸만 베껴 썼다고 하셨습니다. 숙제로 내어 드린 일기를 붙들고 썼다 지운 흔적이 새까맣게 묻어납니다. 오일장 가서 산 물건의 종류까지 빠트리지 않고 조목조목 적어 넣는데 받침 글자가 저 혼자 달아나 버렸다며 너스레도 떠십니다. 복잡한 모음자는 더욱 헛갈린다며 삐뚤빼뚤 쓰인 숙제 장을 들고 아이처럼 검사를 받으십니다. 어르신들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숙연해집니다.

마음에 쏙 드는 시가 있어 낭송해 드리면 더러는 눈시울이 촉촉해지기도 하십니다. 저 어르신들처럼 따뜻한 분들만 계신다면 세상은 참 향기롭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재미난 이야길 들려 드릴 땐 박수를 치며 아이처럼 웃으시지요. 흥에 겨우면 수업 중인 것도 잊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어르신은 노래도 한 곡조 뽑으십니다. 진즉 글을 깨쳤다면 그분들 삶의 빛깔이 훨씬 더 다채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해지기도 합니다.

두 시간의 수업이 지루할까 늘 간식을 챙겨가지만, 어르신들은 따로 먹을 걸 준비해 놓으십니다. 철철이 밭에서 나는 것들이지만 부족하다 싶으면 누룽지도 미리 만들어 두시지요. 때로는 외지에 나간 자식들이 사다 드린 먹거리까지 통째로 들고 오십니다. 간식으로도 모자라 공부방 청소까지 마치고 어린 선생을 기다리시는데 그 정성에 억겁의 인연이 느껴집니다.

노는 손이 아까운 어르신들은 수업이 끝나면 밭으로 가십니다. 기역자로 굽은 허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자식들의 바쁜 일손을 거들어 주시지요. 그도 힘에 겨운 어르신들은 그나마 수월한 고추 꼭지를 따며 소일합니다. 그렇게 모은 쌈짓돈으로 손주들 용돈 챙겨주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하시면서요. 일철이 끝나면 겨우내 병원 순례를 하게 될 걸 알면서도 내리사랑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르신들의 노동이 건강을 해칠까 염려되었습니다. 귀여운 손주들에게 물질적인 것 외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고 싶었지요. 이왕이면 좀 세련되게 작은 하트 만드는 법을 배워 드렸습니다. 엄지와 검지를 살짝 교차하면 생기는 하트 모양은 사람의 심장을 닮아 사랑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지요. 그런데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두 개의 하트 만드는 걸 어려워하셨습니다. 한 분 한 분 손을 잡아 드렸지만 잘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단순한 동작도 그분들에겐 힘이 들 수 있다는 걸 말이지요. 한평생 일만 하신 어르신들은 손이 굳어 마음대로 구부러지지도 않았습니다. 줄 긋기도 바르게 되지 않아 늘 구불구불하게 긋던 어르신들은 연필 글씨를 쓸 때면 손가락 끝에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해 쓰고 계셨습니다. 어찌어찌 엉성한 하트를 만들어 보인 어르신이 허허롭게 웃었습니다. 비로소 그분들 웃음 안에 깊은 주름이 보였습니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삶의 주름이 어르신들 손가락뿐 아니라 온몸에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주름부터 보였습니다. 숨어 있는 주름들이 가만가만 살아온 얘기들을 건넸습니다. 이마에 난 몇 겹의 주름부터 손가락 마디마다 들어선 촘촘한 주름까지 쉬이 생긴 주름은 없었지요. 갖가지 사연을 지닌 주름은 저마다의 빛깔로 물들어 사람의 한 생을 품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웃을 때마다 주름도 함께 출렁거렸습니다. 낡은 스웨터에서 풀려나온 털실처럼 꼬불거리는 주름을 곧게 펼치면 달까지 가닿을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를 품은 또 다른 주름을 만납니다. 파천면 송강리 송강생태공원이 있는 용전천 기슭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땅에도 주름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곳입니다. 생태공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어천교 아래에는 기다랗고 네모난 징검다리가 놓여있습니다. 찰랑거리는 용전천 물소리를 들으며 징검돌을 하나둘 세며 건넙니다. 마지막 징검돌 끝에 서면 특이한 모양으로 주름이 잡힌 ‘송강리 습곡구조’가 나타나지요. 물가 비탈진 면에 자리한 습곡은 검거나 붉은 빛깔의 펑퍼짐한 바위가 깊고 촘촘한 주름을 가득 펼쳐놓고 있습니다.

언젠가 어천 마을 어르신에게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임하댐 상류와 이어지는 어천리에는 변성암으로 이루어진 ‘어천 깡돌’이 즐비했다고 합니다. 서로 부딪치면 깡깡 쇳소리가 나서 깡 돌이라 불렸다지요. 어두운 색에 하얀 띠를 두른 돌은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기도 해서 보는 이마다 탐을 냈을 정도라고요. 그러니 남아나질 않았겠지요. 지금은 어천 주변을 눈여겨보아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임하댐 초입의 집들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원마다 아름다운 어천 깡돌이 한두 개씩 놓여있습니다. 맷방석만 한 것부터 동산만 한 것까지 크기도 모양도 다양합니다.

어천 초입에 자리한 송강 습곡은 어천 깡돌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송강 습곡은 변성암류로 이루어졌다는 설명이 어천리 어르신의 깡돌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떻든 어천리와 이웃한 송강리가 같은 풍경을 하고 앉았다는 느낌은 분명합니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습지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까지 닮았습니다. 총면적이 팔만 평에 달하는 송강생태공원은 그 절반 가까이 습지에 속합니다. 어천리에서 임하댐으로 이어지는 습지 또한 너무나 호젓해서 자연생태공원이라 이름 지어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 속엔 많은 생물을 품고 있지요.

변성암류의 구조적 특징은 주름이라고 하는데요. 지층이 압력을 받아 끊어지지 않고 연속적으로 휘어진 습곡은 지하 깊은 곳의 무른 지각에서 만들어진다니 주름이 생기는 까닭을 알 것도 같습니다. 길게 드러누운 송강 습곡은 그야말로 주름치마를 펼쳐놓은 듯합니다. 양쪽에서 밀어 올리는 힘에 의해 생긴 물결무늬 주름은 지금이라도 바람이 불면 찰랑거릴 것 같습니다. 선캄브리아기인 오억사천만 년 이전에 형성되어 시간의 저장소라 불리는 바위 앞에서 참으로 아찔한 착각을 합니다. 어떻든 사람이나 지층이나 주름은 몸이 품고 있는 언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된 바위 주름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일자 주름, 물결 주름, 넓은 주름, 좁은 주름, 짧은 주름, 긴 주름, 가는 주름, 굵은 주름, 꺾인 주름, 패인 주름이 온갖 주름의 전시장 같습니다. 세 번의 중첩된 습곡 작용과 시기를 달리하는 세 번의 관입 작용, 한 번의 단층 운동에 의해 형성된 연유로 저처럼 다양한 주름이 생겼나 봅니다. 사람의 주름이 그 사람의 일생을 말해주듯 지표면의 주름은 지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 테지요. 청송 골짜기 용전천 아래 말없이 누워있는 주름 바위는 한반도의 지구조 운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니 이곳 하나하나의 주름이 해독이 어려운 암호같이도 보입니다.

습곡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용전천 물을 바라봅니다. 고요한 물빛 덕분에 땅의 주름을 보며 흥분됐던 마음이 차분해지려는데 세탁기만 돌려놓고 그냥 나왔다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벌써 시간이 꽤 흘렀으니 통 안에 갇힌 옷에는 몇 겹의 주름이 졌겠습니다. 옷에 난 주름이야 한 번 더 헹구면 말짱해지겠지요. 사람의 몸에 생긴 주름도 맑은 물에 몇 번 씻는 일만으로 사라진다면 참 좋겠습니다. 문해 교실 어르신들의 주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젊어지는 것에 비하려고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어르신들께 여쭈었더니 사람이 때 되면 늙고 더 나이 들면 먼 길 가야 하는 게 순리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야 젊은 세대의 어깨가 가벼워진다 하시면서요. 어르신들이 ‘에이지 퀘이크(Age-quake)’란 전문 용어를 들어보셨을까요. 그분들은 인구 지진이 가져올 커다란 충격을 이미 삶에서 얻은 경험으로 터득하고 계셨습니다.

수억 년 전에 돌림노래처럼 거듭되었던 땅의 용틀임을 용전천은 빼놓지 않고 지켜보았을 테지요. 땅이 펄펄 끓는 제 몸을 열었을 때 용전천 물은 차마 멀리 도망갈 수 없어 함께 끓었을지도 모릅니다. 용암이 지표면에 아픈 무늬를 새길 때 지구 한 귀퉁이의 역사는 쓰였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물은 그때의 물이 아닙니다. 다만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서 습곡의 가장자리를 아주 조금씩 갉아먹는 습성은 닮아있을 테지요.

습곡을 지나는 바람이 제법 싸늘합니다. 어천교 너머로 지는 해가 용전천을 붉게 물들입니다. 문득 태풍 매미가 지나간 후 자취를 감추었다는 어천교 아래 황소 바위 소식이 궁금해집니다. 어천교 부근이 황소 목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도 그 집채만 한 바위 때문이라는데요. 용전천 깊은 소 아래 묻혀서 제 나이를 기억하느라 몸에 주름을 새기고 있지는 않을까요. 언젠가 땅 위로 솟아오를 커다란 꿈을 간직한 채 말입니다.

습곡을 등지고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문해 교실 어르신들의 자글자글한 주름과 습곡의 깊고 오래된 주름이 겹쳐져 떠오릅니다. 이미 해는 넘어가고 노을빛은 한창 익어가는 이 고장 사과 빛깔을 닮았습니다. 지구의 속도가 까닭 없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징검다리 가운데 서서 마음 안에 어떤 것들로 채워야 아름다운 주름을 간직하게 될까 생각하는 저녁입니다.

박월수(1966년생) 작가는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달'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청송 문인협회 부회장, 청송 ‘시를 읽자’ 회원으로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서부환 2020-11-16 11:02:24
감명깊은 글입니다. “습곡을 등지고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문해 교실 어르신들의 자글자글한 주름과 습곡의 깊고 오래된 주름이 겹쳐져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송강습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