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읍 송생리, 고려~조선시대 송생현 관아 추정 문화유적·유물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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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읍 송생리, 고려~조선시대 송생현 관아 추정 문화유적·유물 출토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9.23 21: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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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읍 송생리 277-3번지 유적 전경
청송읍 송생리 277-3번지 유적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발표자료)
조사대상지 및 주변유적 분포도(S=1:25,000)
조사대상지 및 주변유적 분포도(S=1:25,000)(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발표자료)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의 단독주택 신축용지 내에서 고려~조선 시대 송생현 관아로 추정되는 문화유적 및 그 시대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거 출토돼 청송군 주민에게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건물지 2호
건물지 2호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발표자료)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재 조사연구단에 의하면 청송읍 송생리 277-3번지 내 500㎡에 대해 단독주택 건축 사업 시행자인 토지 소유주가 의뢰하여 2020년 7월 7일~ 2020년 9월 23일 동안 국비 발굴조사를 한 결과 대상 토지 아래 110∼190㎝ 정도에서 고려∼조선 시대 석렬 유구 6기, 추정 적심 4기, 석군 1기, 소성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고지도(여지도(輿地圖), 조선시대 18세기 후반)
고지도(여지도(輿地圖), 조선시대 18세기 후반)(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발표자료)

 

지난 22일 청송문화원 소속 청송향토사연구소(소장 정갑진) 위원들 상대로 한 발굴조사 설명회에서 조사연구단은 "조사 대상지가 문화유적 분포 지도상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서 조선 세종 5년(1423년)까지 약 700년 정도 운용되었던 지방행정 조직인 송생현의 관아지로 추정되는 ‘청송 송생리 송생현지’ 분포지역으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하였다.

 

 

출토 명문기와(左 : ‘○生’銘, 右 : ‘內○’銘)
출토 명문기와(左 : ‘○生’銘, 右 : ‘內○’銘)(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발표자료)

 

조사연구단에 의하면 발굴조사 결과, 유물은 기와 조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수막새 편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 기와로 명문 기와는 ‘○生’銘․‘內○’銘 기와 등 3점 수습되었다고 한다. 평기와의 문양은 무문이 가장 많으며, 어골문과 격자문, 선문, 복합문도 있으며 자기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소량 확인되었고 그 외 철제 솥뚜껑 편과 벼루 편도 수습되었다고 한다.

유적의 처리방안(공사 시행 여부)에 대해서는 23일 문화재청의 문화재 위원(대학교수, 유적과 관련이 있는 전공자) 조사단이 현장에 와서 유적의 내용 및 주변 유적과 관계, 유적 훼손 여부를 파악한 후 공사 시행 여부에 대해 의견을 낼 것이라 한다.

한편, 조사연구단에 의하면 출토된 주요 유물에 대해서는 국가로 귀속되며 청송군이 아닌 대구시나 경주시 박물관으로 이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군청 담당 공무원에 의하면 "출토된 주요 유물에 대해 지자체에서 유치하고 싶어도 현재는 문화재를 보존, 전시할 기반 시설이 없다"며 "청송 민속박물관도 입장객이 거의 없고 그 장소에 다른 사업을 할 계획이라 폐관이 예정되어 있어 지금 당장은 보관이 어렵다"라고 한다.

단독주택 건축 사업 시행자인 토지 소유주 H 씨는 "2년 전에도 인근 지역 100평에 대해서 발굴 작업 후 다시 매립한 적이 있다"며 "이번 150평에 대해서도 본인 땅이 유적지라고 군이나 국가에서 미리 알려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 앞으로 가능한 한 빨리 발굴조사가 끝나길 바란다"라고 한다.

 

발굴조사 현장을 답사하고 있는 청송문화원 소속 청송향토사연구소 위원들
발굴조사 현장을 답사하고 있는 청송문화원 소속 청송향토사연구소 위원들

 

청송향토사연구소의 한 관계자에 의하면 "이번 송생현 문화유적 발굴조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유적·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좀 더 보완을 위해 뒤쪽 기와집, 정원, 과수원 쪽 등 주변 일원에 대해 향후 추가 발굴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며 "출토된 유물이 청송에서는 매우 소중할 수 있으나 대구나 경주 박물관으로 이관될 경우 하찮게 취급될 수 있어 여건이 허락된다면 청송군에서 보관되도록 하였으면 한다"라고 한다.

그는 또 "청송 민속박물관에서 보관이 어렵다면 항온항습이 가능한 심수관 도자기 수장고가 정부 유물 임시 보관소로 지정받을 수 있다면 우리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외부로 갔던 소중한 다른 유물을 다시 찾아와 함께 보관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청송(靑松)은 조선 시대 세종 5년(1423)에 청보군(靑寶郡)과 송생현(松生縣)을 병합하면서, 진보현을 따로 분리하고 옛 청부현(靑鳧縣)과 송생현의 앞 이름을 따서 생긴 지명으로, 청부현은 지금의 청송읍과 파천면 일원이며, 송생현은 이번 조사지 주변 지역인 송생리 일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에서 지원하는 소규모 발굴조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소규모 발굴조사는 사업시행자의 경제적 부담을 해소하고, 대국민 서비스를 증진하기 위해 발굴조사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로 한국문화재재단에서 2010년부터 전담하여 진행하고 있다. 우리 군에서는 2019년에 1회(송생리 277번지 유적) 지원받았으며, 이번 발굴조사가 2번째 이다. 소규모 국비지원 사업의 세부적인 내용은 문화재조사연구단 누리집(cpr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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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인 2020-10-06 10:39:45
역사적인 자리이니 만큼, 가능하면 토지 소유주에게 보상하고, 유적지로 남겨 두거나 공원으로 조성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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