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문명이 버린 효(孝)의 가치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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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과학문명이 버린 효(孝)의 가치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7.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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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86세)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86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문명의 발전 속도가 분초를 다투고 선진국 몇 나라가 독점한 분야도 개발도상국까지 영역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과학문명은 자본화 사회를 급속도로 확산시켜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문화에 대해 변화와 소멸을 갖고 왔다.

한국도 과학문명으로 인해 윤리나 의식에서 심각한 혼란과 효의 가치가 파열되고 그로 인하여 가족이란 공동체에 비극의 현상들이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를 바로잡아 주는 정책이나 세대 간의 공감하는 프로그램을 늦기 전에 도입해야 한다.

불행한 사회로 주저앉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효의 가치가 만행의 근본이고 사회기강과 윤리의 표상이 된 시대가 있었다.

이것이 부모를 잘 섬기고 봉양하는데 만 기준 된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회에 이바지하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공헌한 삶에 대하여 사회가 받들고 예우하고 존중하는 지금의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보상적 윤리의 전통문화로 긴 세월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부실한데 부모를 봉양하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옛 윤리는 사라졌다.

어느 나라보다 독거노인이 많다. 그 덕을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좀 본 것 같다. 사망자 중 노인 비율이 높지만, 사망자 자체가 많지 않은 이유가 독거노인은 자가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를 보면 사망자의 80%인 8만 7,211명이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미국 사회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마치 새들이 비행 연습이 끝나면 독립해 나가듯이 사회활동이 시작하면 부모에 의존하지 않고 부모의 노후는 국가가 돌봐 주는 복지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사회라도 노인들은 발언권이 약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약하니 예산이나 시설이 좋을 수 없다. 예컨대 공간도 협소하고 식생활도 열악한 환경이 될 수 있다.

건강보험이 우리보다 오히려 못한 나라라고 들 하고 있다.

그러하니 양로원에 입소된 노인들이 코로나에 떼죽음이 닥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사망자가 적고 노인들의 희생이 많지 않다.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다. 독일의 사회안전망이 다양하고 합리적이며 노인복지정책이 미국 같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노인을 우대하거나 예우 쪽으로 발전되는 것은 보이지 않고 차별하고 멸시하는 쪽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무늬만 경로 시책이지 사회적 분위기나 공감은 없다는 말이다.

지자체가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은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각 기관이나 농민단체 등 모든 교육에 의무적으로 노인 문제 프로그램이 삽입 편성되고 떨어져 있는 자식과 부모 사이를 연결해주는 프로그램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양로시설도 구상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를 면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이 나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나누는 것은 노인과 젊은이의 간극을 넓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노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장차 노인이 될 본인의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는 행위이다. 또한, 장차 노인이 될 자신을 노인차별이란 암담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속 좁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노인이란 정의(定義)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차는 있지만 대략 70세가 되면 노인 티가 난다. 모든 신체기능이 떨어져 힘이 많이 줄고 청각도 떨어진다.

웃음이 없고 감정표현이 예민치 못하다. 기억력이 없어 잘 잊게 된다. 보수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이런 약점을 빗대어 젊은이는 꼰대라고 일러 친구 간에 의견 충돌이 생기면 꼰대 즉 노인네라고 핀잔을 준다.

젊은 세대에게 기회가 닿는 대로 노인에 대한 정의를 정확히 전달되는 사회교육 프로그램이 정책적으로 배려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들이 노인과의 간극을 좁혀주는 사회적 공감이 절실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효의 가치는 노인을 우대하고 예우하는 데 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노인이 되기 때문에 젊음과 노령의 간격을 좁혀야 하는 이유이다.

과학문명과 효의 가치를 조화롭게 결합하고 발전시켜야 행복한 인간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노인세대를 용도폐기 대상으로 몰아가는 과학문명이 되지 않게 하는 지혜는 젊은이에게만 있다.

젊은이여! 그대들도 노인세대를 향하여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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