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신 성상문의 절개시이다 조선시대 권력을 보면 신권과 완권의 싸움이였다
이방원이 약한왕권을 확실히 세웠으나 문종*단종때 신권이 확실히 강화되어 집현전 학자들이나 젊은 선비들은 김종서 황보인을 규탄했다
그 선봉에 선자가 성삼문이였다 성삼문은 김종서 황보인에게 눈길도 주지않았고 지속적이로 규탄상소를 올렸다 그후 수양대군편에서서 확실한 이론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임금에 되자 수양대군의 부도덕성을 꼬집고 유생들을 동원하여 반 수양대군편에 서서 저항하다가 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주*김문기 와 함께 생육식으로 노량진 언덕에서 거열형으로 처단되였다
세조도 사육신을 처단하던날 특히 성삼문을 보고 만고의 충신이도다 하면서 폭음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성삼문이 죽기전에 지은시이다 성삼문은 수양대군과 같이 계유정란 공신이다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으나 불의의 길을 가지않았고 수양대군이 내린 급여 쌀 한톨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세조도 역신은 삼족을 멸하였으나 사육신의 후손을 보호하였고 성균관 유생들이나 사육신을 뜻을 기리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았다
자기의 안위를 생각하지않고 불의길을 가지않았으면서 불의에 항거하는 봉래산 낙락장송같은 성삼문같은 청렵한 사람이 생각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