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 - 겨울 빨래 (정재옥 시인)

2019-12-27     청송군민신문

겨울 빨래

 

앞들 논에 얼음 꽁꽁 언 날

마당을 가로 지른 빨랫줄에 옷을 널면

쩍쩍 손에 달라붙던 섬유의 촉감은

까칠한 시어머니였다

널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침 잠 갓 깨어난 아이처럼

선잠 취해 기지개 켜는 빨래들

며칠 햇살 받으면서

황태도 아닌데 얼고 녹기를 반복

보들보들해졌다가도

저녁 어스름 내리면

다시 팔 다리 뻗고 굳어졌다

그런 날은 엄마가

그 뻐덕뻐덕한 빨래를 걷어

안방 윗목에 줄 세워 놓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꼭 구운 국수 꼬리 같아

슬며시 눌러보곤 했다

방안 공기를 들이 마신 옷가지들이

서로의 몸에 기댄 채 노글노글해지면

저녁을 먹고 나서 탁탁 털어 개키면

엄마의 구덕구덕한 삶이

초저녁 잠 불러들인 아랫목처럼 따스해졌다

 

정재옥

 

정재옥 시인

1967년 영양군 출생

1990년 시 동인지 '영원' 회원

1990년 마로니에 전국여성 백일장 시 부문 장원

2018년 경북여성신문상

2018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 부문 은상

2018년 시집 '달맞이꽃' 출판

현재 청송읍에서 시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독서토론 논술강사, 시낭독 모임 '시를 읽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