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짧은 소설12] 미투 투미 - 아닌 밤 홍두깨 (박명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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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짧은 소설12] 미투 투미 - 아닌 밤 홍두깨 (박명호 소설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2.01.2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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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투미 - 아닌 밤 홍두깨/박명호

 

 

산불이 났다.

띄엄띄엄 보이던 등산객들이 급하게 산을 내려오고 있다. 불길은 사방으로 퍼져간다. 중간 중간 서 있던 늙은 소나무들을 그대로 스쳐간다. 큰일이다. 바람이 세계 불면 불길이 삽시간에 내가 있는 쪽으로 덮칠 수도 있다. 나는 너덜너덜한 바지가 불을 피하는데 거치적거릴까 봐 바지를 벗어 쥐고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피한다.

산 아래 갈림길에서 긴 치마를 입은 여자가 아직 불난 것을 모르는지 한가하게 지나간다. 나는 위험하니 치마를 벗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자는 내 말에 눈을 흘기며 산등성이를 돌아간다. 잠시 뒤 그 여자가 어디서 구했는지 홍두깨 같은 몽둥이를 들고 내 쪽으로 달려온다. 씩씩거리는 표정이 나를 사정없이 내리칠 기세였다.

“산불이 났어요, 산불!”

나는 소리쳤지만 여자는 나를 더욱 이상한 놈으로 보고 달려들었다. 여자의 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험악해졌다. 이럴 땐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이다. 나는 어쩔 수없이 뒤돌아 도망을 간다. 마치 내가 여자에게 나쁜 짓을 하고 내빼는 꼴이 되었다. 여자는 몽둥이를 들고 따라오고 나는 바지를 벗은 채 팬티 차림으로 달아나니 누가 봐도 뻔한 장면이었다. 도망가면서 그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달리기를 멈추고 뒤돌아서 따져볼까 하다가 상황이 너무 험악해서 그냥 도망을 친다. 여자는 계속 따라온다. 언제부턴가 여자의 남자도 따라온다. 상황이 더 험악해졌다.

앞에는 불이 타는 산이 다가온다.

진퇴양난 정말 난감하다.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 소설가 약력>

1955년 청송군 현서면 구산동 출생

화목초등학교 44회 졸업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장편소설/가롯의 창세기 등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꾸기 뿔 등

산문집/ 촌놈과 상놈, 만주 일기 등

크리스천신문 신인문예상, 부산 MBC 신인문예상

부산작가상, 부산 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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