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짧은 소설8] 돈돈2 (박명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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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짧은 소설8] 돈돈2 (박명호 소설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1.12.2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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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2/박명호

 

 

굼벵이도 구부는 재주가 있다.

구렁이처럼 굽은 돌담은 그렇게 길었다. 국민 학교 4학년 늦은 봄이었다.

나와 팔이는 며칠째 집으로 가는 길에 돌담 구멍구멍을 꼭 쥐새끼처럼 후비며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삼십 원’이라는 큰돈이 숨겨진 구멍을 찾느라 안간힘을 다했다.

빙씨이 같은 놈. 그리 큰돈을 숨겨놓은 곳도 모리나.

그래도 나는 팔이를 욕할 수 없었다. 녀석이 내게 무슨 빚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단순히 내가 좋아서 그 큰돈을 주겠다는데 그까짓 바보스러움 정도야 애교라 할 수 있었다.

버얼건 빛깔의 십 원짜리 종이 돈, 그것도 세 장씩이나. 그것이 사흘이 아니라 열흘인들 수고하지 않겠는가. 팔이는 나를 위해 마련한 돈이 혹시나 못된 장터 아이들에게 빼앗길까 염려해서 깊숙이 숨겼다는데 어찌 그 성의가 고마웁지 않으랴.

돌담 그림자가 내 키보다 길게 누울 때까지 나는 돈이 든 구멍을 찾고 또 찾으면서 행여 팔이에게 싫은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저만큼 그 못난 팔이도 열심히 구멍을 찾는 듯했다. 날 늦은 뻐꾸기 소리가 그쪽으로 흩어져 내렸다.

사실 나는 당시 장터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장터의 텃세를 별로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팔이처럼 십 리 재 넘어 학교에 오는 아이들에게는 장터 아이들이 여간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 그들은 팔이 같은 아이들을 많이 괴롭혔다.

장터 골목대장 출신인 나는 작은 시골 학교에서 싸움 한번 하지 않고 같은 학년의 서열 일위가 되었다. 우리의 서열은 주로 비교우위에 입각하여 자연스럽게 결정되어졌다. 거기에는 물론 형들도 여럿 있었고, 공부도 잘했지만 무엇보다 ‘장터’라는 텃세가 알게 모르게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날도 나는 팔이에게 아무런 짜증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도 아니 한 주 내내 집에 늦게 온다는 어머니의 꾸중도 감수하면서 그 버얼건 종이 돈을 완전히 포기하는 순간에도, 아니 그 뒤 졸업할 때까지도,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때 자칫하면 내 속에서 부글거리던 짜증이 튀어나올까봐 조심을 했었다. 그것은 내가 그의 채권자도 아니었고 아무리 큰돈이라 하지만 내 어린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그것을 보이기가 싫었을 뿐이었다.

하기야 아무런 이유 없이 공짜를 바랬던 내 얄팍한 속을 내보이기는 했지만 도대체 팔이는 왜 내게 돈을 주려고 했을까.

애초에 팔이는 돈이 없었다. 순수를 가장한 돈으로 인정(人情)을 볼모로 나에게 사기를 친 샘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는데 나를 이용한 것이었다. 내가 그를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순수를 믿었던 내 순수에 대한 상처, 곧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을 진작 몸으로 알고 있었다. 비상한 생존본능이라 할 수 있었다.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 소설가 약력>

1955년 청송군 현서면 구산동 출생

화목초등학교 44회 졸업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장편소설/가롯의 창세기 등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꾸기 뿔 등

산문집/ 촌놈과 상놈, 만주 일기 등

크리스천신문 신인문예상, 부산 MBC 신인문예상

부산작가상, 부산 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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