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입술이 보고 싶다. (박월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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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입술이 보고 싶다. (박월수 작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1.06.06 13:3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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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월수 작가

 

첫인상이 사라졌다. 전염병이 번지면서 입술이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지만 얼굴의 반을 입 가리개로 덮어버린 사람의 첫인상은 모호하다. 어디에서나 눈만 내어놓은 이들을 마주쳐야 하는 일이 불안하다. 우리는 지금 재난영화 같은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런 중에도 눈 화장에 정성을 들이는 여자를 보면 위로가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나마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서 강한 삶의 의지를 본다. 어떻든 소통의 창구 같은 입술을 꼭꼭 숨겨야 한다는 건 숨 막히는 일이다.

전염병 가운데서도 금지된 입술을 내어놓을 때가 있다. 누군가와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다. 그럴 때 가끔 처신이 불편해지는 걸 느낀다. 처음 만나는 사람일 경우에 더러 그러하다. 눈만 내어놓았을 때와 얼굴 전체를 볼 때의 느낌이 사뭇 달라지는 탓이다. 그보다 더 난처한 건 입술만 쏙 빼놓고 화장한 여자를 볼 때다. 입 가리개에 입술 화장 묻는 일이 싫어서일 테지만 어딘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벗은 몸을 본 것 같기도 해서 민망하다.

두 해 전 가까이 지내는 여자 둘과 동해 바닷가를 쏘다녔다. 칼칼한 흑태 매운탕을 흡입하듯 들이붓고 팽나무 울타리가 인상적인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커피잔에 남겨진 그녀들의 입술 자국이 카페에 걸린 달 간판처럼 은은했다. 양포항 귀퉁이에선 해녀 아주머니들이 물질해 썰어주는 해삼이며 멍게를 놓고 소주를 마셨다. 평상에 앉아 수평선에 입술 맞대고 마시는 낮술은 달콤했다. 동해 일몰이 그녀들의 입술처럼 붉게 물들 때쯤 해풍으로 말린 국수를 개운하게 말아먹고 우린 헤어졌다. 그날 나누었던 맛깔난 수다와 미각 여행을 생각하면 눈부신 그녀들의 입술이 먼저 떠오른다.

그 계절의 끝 무렵에 반갑잖은 기별을 들었다. 그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은 암에 걸렸다고 했다. 시를 쓰는 그녀들은 또 다른 동병상련의 시인 하나와 톡방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한다고 했다. 손가락이 입술을 대신하는 가상의 공간에 걱정거리를 부려놓고 서로 토닥여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작명하는 재주가 남다른 그녀들은 방의 이름을 ‘암스트롱’이라 지었다며 전화기 속에서 실없이 웃었다. 그 이름처럼 달을 정복하듯 암을 정복하길 바랐다. 나쁜 병을 떨치고 건강하게 되기를 틈날 때마다 기도했다.

삭막한 날들이었다. 술친구를 잃은 아쉬움보다 아픈 그녀들 생각에 재미없고 서글픈 나날이었다. 그러구러 해가 바뀌고 때아닌 전염병이 창궐해서 너나없이 입 가리개를 하는 처지가 되어 봄을 맞았다. 세상이 전염병 때문에 우울증을 앓거나 말거나 봄은 꽃과 함께 당도해 있었다. 입 가리개가 필요치 않은 꽃은 부시도록 탐스러웠으나 발목이 묶인 우리는 봄 밖에 있었다. 병원을 오가며 병과 싸우는 그녀들이 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외부와의 접촉은 면역이 약한 그녀들에겐 치명적이 될 수 있었고 빠지기 시작한 머리 모양 또한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터였다.

카톡 선물코너에서 벚꽃 색깔 립스틱을 콕 찍어 그녀들에게 보냈다. 풀 죽어지낼 그녀들이 입 가리개 안에서나마 화사한 입술을 간직했으면 싶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들 자신에게 위안이 되는 입술을 가졌으면 했다. 그녀들이 벚꽃색 립스틱을 바르고 봄을 났는지 어쨌는지 물어보지 않았으나 간간히 접하는 소식은 환하고 밝았다. 그녀들이 쓰는 사람 냄새나는 시처럼 병도 기꺼이 끌어안았다가 편안히 놓아주는 법을 익히고 있을 거라 믿기로 했다.

두 번째의 봄을 맞았다. 젖무덤이 가벼워진 그녀들을 다시 동해 귀퉁이에서 만났다. 아직도 전염병은 진행형이어서 우리는 입 가리개를 한 채였다. “내가 여자였을 적에”를 농담 삼아 던질 정도로 그녀들은 밝고 넉넉했다. 수유의 기억마저 가물거리는 여자들에게 가슴의 있고 없음에는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가발과 모자와 입 가리개로 무장한 여자 셋이 호미반도 길을 걸었다. 파도가 와서 발밑을 적시면 마녀의 장화를 빌려 신은 듯 풀쩍거리기도 했으나 예전처럼 통통 튀는 입술은 볼 수 없었다. 소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입으로 하는 소리를 우리는 지금껏 귀만 아니라 눈으로도 듣고 있었다.

전염병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등산길에나 산책길에서 입 가리고 걷는 부인들을 볼 수 있었다. 이를 보는 주변 사람들도 어느 사이엔가 입술 없는 얼굴에 적응되어 갔다. 눈에 보이는 성감대이며 사람의 얼굴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입술을 가리는 대신 하얀 피부를 유지하기로 한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키스가 일상인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을지 모르나 우리에겐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있었다. 전염병 사태 속에서 입 가리는 일을 숙달된 조교처럼 하고 있는 우리는 소리를 볼 수 없다는 것의 불편함을 뒤늦게 깨닫는다.

일상에서 입술을 가리면서 우리는 하나의 섬이 되었다. 서로의 체온을 나눌 수 없는 세상은 삭막하다. 입술이 사라진 얼굴에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눈만으로 소통하기엔 숨이 가쁘다. 단절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불쌍하다. 으스러질 듯 껴안고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던 때가 꿈결처럼 아득하다. 언제쯤 입 가리개에서 벗어나 조곤조곤 나누는 따뜻한 얘기들을 귀가 아닌 눈으로 들을 수 있을까.

우리의 입술을 가져간 것이 무엇 때문인지 누구의 잘못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다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입술을 내어놓고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 잘못을 한 탓이란 건 어렴풋이 안다. 입술을 내어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 전에, 다시 입술을 가리게 되는 날이 오지 않기 위한 방책을 세우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그러려면 지구 한 귀퉁이 호호 입김 불어 닦아내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월수(1966년생) 작가는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청송 문인협회 부회장, 청송 시를 읽자회원으로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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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2021-06-08 22:16:59
슬프고도 처연한 느낌까지 맛갈스런 안주로 신문에 올려 주신 작가의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세태가 하 수상하고 세파에 사람 살이가 녹록치 않아도 지키고 가꿔나가야 할 멋들에 대해 소박한 존엄에 대해 선명한 자국으로 알려주시네요. 좋은 글 재미있었습니다. ^^

김수환 2021-06-06 22:53:39
코로나 바이러스는 참으로 야속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네요. 박 작가님의 톡 쏘는 글 솜씨에 오늘도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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