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공감성(共感性)(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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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공감성(共感性)(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1.03.3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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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톡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87세)
배용진 전 가톡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87세)

 

공감성이란 사전적인 범위를 조금 승화시키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상태나 사고에 대하여 자신도 감정적, 객관적 동의를 느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나는 가난하지 않지만, 라면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적 고통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함께 느끼고 그들과 공유하는 마음씨가 공감성이다.

가족 구성원 혹은 사회 구성원에서 공감성이 사라지면 공동체의 범위가 축소되어 결국 나밖에 없는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 가정은 핵가족이 되어 할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에서 빠진 지 오래다. 사회는 끼리끼리다. 갖은 자는 갖은 자대로, 못 갖은 자는 못 갖은 자대로 국가가 안아주지 못하는 비혼, 졸혼, 독거노인까지 분화된 사회가 되고 만다.

자본주의가 경제성장과 복지정책에는 성공한 나라가 많지만 공감성이 유실되어 가정이나 사회가 삭막하여 선진국일수록 정신질환자에 의한 공포를 느낄 정도이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로 선진국에서 더욱 심한 희생을 치른 것도 공감성 유실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총기사건도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성장의 역기능에 대처해 통일 이후 독일은 한국의 다산 정약용의 삼농정책(三農政策: 便農, 厚農, 上農)도 부르고 중국 공자의 부자유친(父子有親)도 불러왔다.

농촌에 부모와 함께 농업경영을 하면 많은 혜택을 주었다. 유친(有親)이란 뜻은 소통과 대화이다. 여기에서 부자(父子) 간의 정감을 통해 공감성이 길러지고 반포지효(反哺之孝)가 생동한다. 그래서 독일은 균형발전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농업 안전국을 만들었다.

필자가 70대 시절 80대의 전 관료(중앙부서 국장)가 쓴 “늙음이 서럽구나”의 기고문을 읽고 선뜩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잘 나갈 때 집에 오면 왕 대접을 받았고 귀여운 손자에게는 늘 고급 과자와 과일은 기본이고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선물이 한 보따리에 월급은 꼬박꼬박 아내에게 전달되니 아내는 희색이 만발했다. 아들은 때로 아빠 찬스로 사업이 잘되었다. 늘 부자유친 했었다.

퇴직 이후 세월은 번개같이 빨라 친구는 하나둘 세상을 등지고 직장동료도 소식이 두절이다. 책을 보자니 눈이 말리고 공원에 가서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집에 오면 아내는 “경로당에서 영감 점심 차려주러 오는 사람 나뿐”이라고 불만을 터트린다.

손자 놈도 장성하여 지네들 일에 바빠 안부전화 한번 없다.

아들의 부자유친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니 재물, 자식 모두가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고 내 월급의 반이 세금으로 나가더라도 내 노후가 즐겁고 보람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현실 고백이다.

당시 나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나의 공감능력이 모자랐고 그로 인하여 공감성이 엷었다는 사실을 80대가 되어 감지되었다.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기부문화를 사회가치의 윗자리에 두는 것도 내 재물이 가는 곳에 내 마음도 간다는 성서 구절을 상기시킨다.

재물과 마음은 함께 움직인다. 즉 기부문화는 공감성의 발현이다.

우리나라도 기부문화가 날로 고양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 민족문화는 공감능력을 함양하는 정신문화의 뿌리가 매우 깊은 나라이다. 정치지도자는 조금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어도 성과를 올릴 수 있다.

한 사례로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며느리에게 반포수당(反哺手當) 명목으로 월 10만 원이라도 지원해 부모님 반찬 마련에 보태 쓰라고 한다면 국가가 인정하는 칭찬이 되는 일이다.

자본주의란 원리는 인간의 심성을 돈에 꿰어 두었기 때문에 돈이 생기는 일에는 달음박질하지만, 돈이 생기지 않으면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여기에 익숙해져 있다.

여기에는 혈연도 친구도 없다. 이미 우리 민법이 팔촌이 넘으면 친족이 아니다. 그것도 넓다고 친족을 사촌으로 하자고 헌법재판소에 제소 중이다.

이런 현실에서 공감능력 함양 연구 없이 법만 자꾸 만들어댄다고 나라 운영이 제대로 되겠는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와 현실적 감성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사회적 공감성을 만들어 내는 일에 국가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눈물도 웃음도 없는 공동체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온기도 사람 냄새도 사라진다. 정치지도자가 외치는 경제성장의 깃발로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절대 조건이 될 수 없다. 삭막한 공동체에 공감이 충만하면 사람의 온기는 살아난다. 그 요체는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과 재물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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