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병암 화강암 단애 혹은 범덤에서 호랑이를 추억함(박월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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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병암 화강암 단애 혹은 범덤에서 호랑이를 추억함(박월수 작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1.03.25 12: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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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월수 작가
박월수 작가

 

삼자현재를 넘는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잠시 긴장을 늦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연초록빛을 머금은 나무들이 열병식을 하는 너머로 높낮이가 다른 산이 끝도 없이 포개져 있다. 이제 곧 터널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어서 험난한 이 재도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 갈 것이다. 차가 다니기 전 이곳은 산적뿐 아니라 위험한 짐승들이 자주 출몰하던 곳이란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은 꼭 셋 이상이 모여야 재를 넘었단다.

첩첩산중 험난한 고개를 넘으며 만났을 짐승 중엔 굶주린 호랑이도 있지 않았을까. 요즘에도 이곳 산골엔 닭을 노리는 삵이 대낮에도 나타나곤 한다. 허술하게 닭장을 지었다간 밤사이 깃털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게 다반사다. 담비도 적잖이 눈에 띄는 곳이다. 그러니 먼 옛날 이 골짜기에 호랑이가 흔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산중에서 들리던 호랑이 울음소리는 길 가던 나그네의 간담을 얼마나 서늘하게 했을까.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한데 나는 지금 그런 호랑이의 흔적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삼자현재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들면 부남면이다. 지금은 폐교된 대전초등학교에서 시무나무 숲이 우거진 나실 마을 초입을 지나고 오르막길 양쪽에 커다랗고 네모난 돌이 버티고선 홍원리 지석묘를 지난다. 부남초등학교를 거쳐 제일상회 삼거리에서 얼음골 방향으로 가다 보면 눈앞에 병풍처럼 생긴 바위 벼랑이 펼쳐진다. 구천리 ‘병암화강암단애’다. 부남 사람들에게 ‘병암’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그게 무어냐고 반문한다. ‘범덤’이라고 고쳐 물어야 반색을 하고 아는 척을 한다. 이곳 사람들에게 병암은 병풍바위가 아니라 범이 떨어져 죽은 바위, 범바위다.

범을 신성시하는 관습 때문일까 범덤을 낀 숲을 사람들은 굳이 ‘범덤숲’이라 부른다. 아름드리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은 가족 나들이를 하기에 좋은 곳이다. 예부터 이곳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숲을 좋아해서 특히 여름은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숲을 낀 천변에 솥을 내 걸고 천렵을 하며 화합을 다졌다. 아낙들은 범덤숲 개울에 놓인 징검돌에 앉아 빨래했다.

그네들이 숲에 들어서 바라본 건 숲 너머에 있는 웅장한 범덤이었다. 마을을 지키듯 버티고 선 검붉은 병풍바위는 언제쯤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범덤숲이 그랬던 것처럼. 집집마다 호랑이 그림을 걸어두고 집안의 안녕을 빌 듯 부남 사람들은 어쩌면 숲 저쪽에 있는 범덤을 생각하며 가족의 안녕을 소원했는지 모른다.

범덤 앞으로 사과꽃 만발한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사과밭이다. 초록의 이파리에 하얀 꽃이 내려앉아 범을 생각하느라 긴장된 머릿속이 말랑해진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 지질공원을 축복처럼 눈앞에 두고 주차할 곳을 찾느라 잠시 망설인다. 과수원 사이 농로에 차를 세우고 범덤을 올려다본다. 아득하다. 미리 찾아본 자료에는 범덤의 최고 높이는 백사십 미터라고 나와 있었다. 어릴 적 운동회 날 백 미터 달리기 해 본 사람들은 안다. 도착지점이 얼마나 멀었는지. 그보다 더 먼 거리를 똑바로 세워놓은 바위 벼랑을 바라보자니 현기증이 인다.

지금은 베어지고 개간되어 한 귀퉁이 범덤숲이란 이름으로 남았지만 오랜 옛날 범덤 주변은 울창한 숲이었다. 숲 안에 깊은 골짜기는 ‘범골’로 불리었다니 범이 활개를 치고 다녔음이 분명하다. 빽빽한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호랑이들의 은신처로 안성맞춤이었을 성싶다. 그들은 하늘과 맞닿은 듯한 병암의 이 끝과 저 끝을 수시로 넘나들었으리라. 먹이를 찾아 뜀박질하고 마음에 맞는 짝을 놓고 실랑이를 하는 동안 호랑이의 울음소리는 숲을 울리고 마을까지 내려갔을 테지. 깜깜한 밤중에 들리는 그 소리는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범덤을 범접 못할 신성한 곳으로 여기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둑에 올라서서 달풀 우거진 여울을 내려다본다. 찰랑거리며 흐르는 물소리 귀에 감긴다. 벼랑 아래 맑은 여울은 범의 놀이터로 쓰였을 게 분명하다. 물을 좋아하는 호랑이는 배가 부르면 제 처자식을 데리고 이 여울에서 헤엄을 치며 놀았을 게다. 더운 걸 못 견디는 호랑이가 여름 한 철 이 여울 속에 빠져 노는 상상을 해본다. 정겹기 그지없다. 오늘처럼 빛이 좋은 날 물가로 소풍을 나온 호랑이 가족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 풍경인가. 그들을 지긋한 눈으로 지켜보았을 병암을 살펴보니 희한하게도 호랑이 등가죽 빛깔을 닮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병암 앞 천변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단골 소풍 장소였다. 너른 자갈밭에서 아이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 수건 돌리기를 하며 놀았고 자갈돌이며 덤불숲을 뒤지며 보물 찾기를 했다. 장기자랑을 하느라 목청껏 노래도 불렀다. 물가에 앉아 딸랑 단무지만 들어간 김밥을 먹고 말표 사이다를 마셨던 아이들은 지금은 일선에서 퇴직한 노년이 되었다. 그들은 웅장한 범덤을 보며 원대한 꿈을 키웠다. 자라서 도시에 있는 학교로 갔고 산업역군이 되어 나라의 부강을 위해 한 시절을 보냈다. 이제 다시 돌아와 범덤을 바라보며 옛 시절을 추억한다. 범덤숲에 모여 막걸리잔을 기울인다. 범덤이 있어 그들은 꿈을 꾸었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범덤 여기저기 움푹 팬 곳이 눈에 띈다. 햇빛과 바람과 물과 그 사이에 깃든 나무가 손잡고 만든 흔적일 테지만 범이 제 가족을 거느리고 둥지를 틀기엔 알맞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붉은빛과 검은빛이 고루 섞인 바위벽의 움푹한 곳에 몸을 감춘 호랑이를 떠올린다. 누구도 눈치챌 수 없을 천혜의 장소다. 이토록 완벽한 곳을 두고 호랑이는 왜 사라져 버렸을까. 마을의 수호신처럼 범덤을 무대로 활동했을 호랑이는 언제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을까. 일제 강점기 총을 들고 덤벼드는 포수들이 생겨나면서 범덤은 범을 안전하게 품어주는 역할을 그만두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범덤에 길게 뻗은 수직의 절리가 떨어져 죽은 범의 발톱 자국 같다고 어떤 이는 말한다.

벼랑 아래 떨어져 죽은 범은 어떻게 되었을까. 간 큰 누군가가 가보로 남기기 위해 가죽만 벗겨가 버리고 남은 살은 썩어 흙이 되었을까. 무슨 사연으로 저 아름다운 벼랑에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먹잇감을 쫓다가 실족을 했을까. 짝짓기 감을 놓고 다투다가 떠밀렸을까. 총을 든 포수에게 희생을 당했을까. 사람들은 정말 범이 떨어져 죽은 걸 보기는 했을까. 아득히 높은 덤을 보고 오로지 범만이 올라갈 수 있는 벼랑이라 생각해 그런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았을까. 수천 년을 그 자리에 있어온 범덤을 올려다보며 온갖 상상에 잠긴다.

병암 바로 곁에 제법 잘 지어진 서원이 하나 있다.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몇 번 옮겨 짓기도 했다는 병암서원이다. 율곡 이이와 사계 김장생이 병암을 다녀간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라고 한다. 오백 년 전에 살았던 대학자이며 정치가가 다녀갈 정도였으면 병암은 이미 진귀한 풍모를 가진 바위로 나라 안에 이름이 났던 모양이다. 서원은 범덤의 위상에 어울리게 사액서원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서원 마당에 들어선다. 선비들 글 읽는 소리 간데없고 키 작은 민들레 무리 노랗게 웃으며 손님을 맞는다. 공부하는 선비들 발걸음 끊이지 않아 서원 마루에 윤기가 자르르 흐를 그때에도 밤이면 호랑이 울음소리 담장을 넘었을 게다. 그럴 때면 마당 귀퉁이에 핀 작은 꽃마저 저절로 몸을 움츠렸겠지. 담 너머에 있는 범덤을 넘겨다본다. 떨어져서 바라보니 범덤의 위용이 새삼 커다랗게 다가온다. 거기 어디 우거진 잡목 숲에서 잘 생긴 호랑이 한 마리 포효하며 튀어나올 것 같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란 말을 떠올린다. 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던 솔직한 짐승이었다. 사람은 그에 비하면 모든 걸 속으로 감추고 사는 음흉한 존재다. 사람의 욕심 때문에 호랑이가 사라진 범덤에서 아득한 옛날 이곳을 누비던 호랑이를 추억한다. 범덤은 여전히 신비롭고 흐르는 물소리 나른한데 주변 사과꽃 향기 함께 맡을 누군가가 호랑이였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박월수(1966년생) 작가는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달'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청송 문인협회 부회장, 청송 ‘시를 읽자’ 회원으로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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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하 2022-05-16 18:23:43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청송 살면서도 잘 모르는 것들이 워낙 많네요^^;;;

다빈치 2021-05-10 20:03:20
월수 작가님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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