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스웨덴 고등학교 졸업시즌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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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스웨덴 고등학교 졸업시즌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1.02.0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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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87세)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87세)

 

사업상 스웨덴에 머물고 있는 우리 국민이 스웨덴의 이모저모를 우리 언론에 연재하는 기사에서 고등학교 졸업시즌 문화가 우리와 너무 다르고 복지 천국으로 가는 시발점이란 느낌을 받았음에 공유하고 싶다.

졸업시즌 한 달간은 온 국민이 함께 축하하고 그들의 행사나 행위극이 사회적 질서에 조금 위반이 되거나 지장을 끼쳐도 이해와 관용으로 넘긴다니 한국인으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행사 몇 부분을 소개하면 단연 가장행렬이 가장 요란스럽다고 한다.

트럭을 타고 고성방가로 시내를 배회한다니 분명 교통법규 위반이다. 그러나 당국은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주고 주민들은 119나 소방차가 통과하는 상황으로 양보한다니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화임이 틀림없다.

 

사진 출처 : 스웨덴의 한 신문사인 Sydsvenskan 홈페이지
사진 출처 : 스웨덴의 한 신문사인 Sydsvenskan 홈페이지

 

고교에서 각자의 소질과 특기를 키운 기량을 마음껏 발표하는 기회가 바로 졸업시즌이다. 음악, 체육, 무용 특기를 발표하는 날은 학부모, 친척 모두가 참석하고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온 기분으로 마음껏 축하하고 즐기는 날이라고 하니 ‘빨리빨리’에 쫓기면서 살아가는 우리 문화에서 본다면 너무나 여유로운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마음이 가깝던 친구 십여 명이 그룹이 되어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초대를 받아 친구 댁에서 식사도 하고 졸업 축하의 기쁨을 발산하기도 한다. 이웃 사람들은 저 집 애가 벌써 졸업인가? 이웃끼리 축하도 한다고 한다.

졸업시즌이 되면 이런 행사가 학교마다 진행되니 한 달쯤 계속 시내가 시끌 버끌 할 수밖에 없다.

스웨덴의 고졸은 고등학교까지 키워주신 부모님과 사실상 작별이기 때문이다. 고졸 후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 기숙사가 내 집이고 경제적인 모든 부담은 국가가 맡아주니 부모로부터 신세를 지는 일이 없다고 한다.

제비 새끼가 둥지에서 어미의 도움으로 비행능력이 있을 때쯤 어미와 함께 비행 연습을 마치면 독립해 나가듯이 졸업시즌은 즐거운 비행 연습 기간에 비유할 수 있다.

취업을 희망하는 졸업자는 직장을 선택하고 직장이 결정되면 원룸과 같은 독신자 주택을 배정받아 열심히 일하고 결혼자금도 저축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살아간다. 부모에게 의지하거나 무위도식이란 생각할 수 없는 문화라고 한다.

아들딸은 우리 집이 아닌 부모님 댁을 자주 방문하고 혈연의 애정을 나누지만, 가족이란 개념(槪念)은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일 것이다.

부모들은 노후를 위해 경제활동을 열심히 하고 때가 되면 연금으로 노후를 여유 있게 살아가다가 힘이 부치면 국가의 복지정책의 하나인 양로시설에서 여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스웨덴의 복지는 우리가 흔히들 천국이라 말하기도 하는 이유이다.

그런 국가정책에서 보면 고교 졸업은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고교 졸업시즌은 수능시험이 대신한다.

70년대를 회상하면 우리 고교 졸업시즌도 낭만적인 축제 분위기가 있었다. 밀가루를 덮어쓰고 모자를 찢어 각설이 타령을 하고 술도 마셔보고 성인(成人) 티를 내느라 담배를 빼물고 거리를 활보했지만 국민들의 공감과 축하를 받지는 못했다.

이런 졸업문화는 사라지고 수능시험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배려 응원의 열기는 외국인이 놀라고 있다.

차를 놓친 수험생을 경찰차가 나서고 입원한 수험생을 위해 병원에서 특별히 시험을 치르게 한다. 듣기 시험 시간대에 항공기가 뜨지 못한다.

전국 직장인의 출근 시간을 늦추어 수험생이 대중교통 이용이 쉽게 해 준다. 전 국민이 성원하는 것이 수능시험이다.

기상대는 수능 추위가 있느니 없느니 하고 상세한 예보도 해준다.

스웨덴의 고교 졸업시즌 축제보다 조금도 손색없는 국민적 관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다른가?

수능의 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학 등록금이란 능선을 넘어야 한다.

그다음 기숙사에 입사 여부가 또 한 고개가 있다.

노동자, 농민의 아들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시야(視野)에 고생하는 부모님의 그림자가 있지만, 졸업 후 취직하여 부모님께 보은 할만한 형편이 될 때 부모를 웃게 하는 아들딸이 몇이나 될까?

아들이 아빠가 되고 딸이 엄마가 되는 시대가 오면 노후대책 없이 아들딸을 자력으로 넘지 못할 능선을 함께 밀어 올린 부모는 기진맥진이 된다.

그렇지만 국가는 모른 채 한다.

노쇠한 부모는 자식의 미래에 짐이 되는 시점에 슬픈 이별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수능시험 문은 지옥문이 되고 만다.

우리의 GDP가 이탈리아를 앞질렀다고 한다.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지 못하고 개혁이란 구호만 바람에 나부낀다.

환경과 생명이 결합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도 버리는 현재의 한국이 복지국가가 될 수 있으려면 공평과 공정의 이데올로기에 한 맺힌 지도자가 혜성처럼 나타나지 않는 한 불가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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