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오치규 선생과 함께 읽는 이오덕의 시편 (5) 어디론지 가고 싶어(공감과 소통을 통한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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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오치규 선생과 함께 읽는 이오덕의 시편 (5) 어디론지 가고 싶어(공감과 소통을 통한 연대의 힘)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1.01.1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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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이 낳은 문인 교육자 이오덕 선생님의 주옥같은 시편을 함께 읽는 연재입니다.)

 

오치규 작가
오치규 작가

 

문학 평론가이자 철학자인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ács는 근대 이후 등장한 문학 양식인 '소설'의 기원을 밝힌 불멸의 저서 <소설의 이론> 모두冒頭에서 “철학哲學이란 본래 ‘고향故鄕을 향한 향수鄕愁’이자, ‘어디서나 자기 집에 머물고자 하는 충동’이라고 노발리스는 말한 바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철학은 향수이다." 참 멋진 말입니다.

'향수'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현재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면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러울 때, 지금 내 곁에 사람이 없고 혼자일 때 우리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분열이 없고 모든 것이 완전하고 행복했던 고향에서의 삶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철학이나 문학은 자기가 서 있는 곳에 만족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낯선 곳을 이해하고 그곳을 자신이 있을만한 곳으로 만들려 애쓰는 것이 바로 사유思惟나 시작詩作이며 이로 인해 문학과 철학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철학자나 문학가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늘 떠나고 싶은 '방랑벽'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오덕 선생님도 그랬습니다. 견디기 힘겨운 삶에 지친 선생님의 모습은 선생님의 '제목 없는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제는 교안을 안 썼다고 잔소리를 듣고

오늘은 청소가 안 되었다고 불려가고

방학 책값 가져오라, 도덕책 값 가져오라.

유리 값, 종잇값, 크리스마스 씰, 운동회비,

충무공 동상 대금…

빈 병을 가져오라, 신문 잡지 가져오라...

대통령 강조사항을 외워야 하고

문교부의 방침, 도의 방침, 교육구의 방침,

도지사의 열세 가지 유실녹화 수종을 외워야 하고

좌천과 파면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

아첨과 비굴이 반지르르 기름을 바르고 다니는데,

꿈에도 그리운 나의 소년들은 어디 갔는가?

(이오덕 시 '제목 없는 시' 중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학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이 시를 읽다 보면 우리가 그저 살았던 그 시대의 문제와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고 기록한 분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그런 '선구자'였습니다. "아첨과 비굴이 반지르르 기름을 바르고 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선생님은 "좌천과 파면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 사셨고 "꿈에도 그리운 나의 소년들" 생각에 무척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현실을 부정하고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나의 하늘은 어디 있는가?

차라리 산속으로 들어가

풀뿌리 나무 열매를 먹고

산짐승과 함께 살고 싶구나!

(위의 시 중에서)

이오덕 선생님은 청송군 현서면에 태어나 영덕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공무원을 하다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교사 시험에 응시해 고향인 청송군 부동면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저열한 교육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고 아이들에게 자기의 삶을 노래하는 시를 쓰도록 가르치며 비판을 쏟아 내었고 그래서 교육 당국의 미움을 받아 감시를 받으며 18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니는 수난을 당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견딜 수 없어 선생님은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하숙비도 못 주고

밥 먹으러 집에 갈 수도 없고

어제는 수업료를 독촉하면서

눈물 흘리는 학생을 붙잡고

같이 울고 싶은 마음을 참았지만

나보다 더 밑바닥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약한 자여, 이 어둔 하늘 밑에

나는 질식하겠구나!

삐익~ 또다시 차 소리가 난다.

아무도 없는 정거정을 나와서

터벅터벅 나는 걸어가자

어디론지 자꾸 걸어가자!

(이오덕 시 '어디론지 가고 싶어' 중에서)

"어둔 하늘 밑에 나는 질식하겠구나!"라는 탄식이 나는 현실을 벗어나 선생님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떠나지 못했고 오래도록 교육 현장을 지켰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사회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떠나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나보다 더 밑바닥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길을 차라리 선택했습니다.

선생님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록했고 아이들에게 '천사'가 되기를 강요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자기의 삶을 담담히 노래하기를 가르쳤습니다. 삶의 노래가 진정한 노래이며 자기의 삶을 노래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자연스레 나타난다는 것이 선생님의 신념이었습니다. 모두가 조용하기를 원하고 질서를 지키기를 원하던 시대였지만 선생님은 마음껏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싹이 숨어 있다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떠나고만 싶은 힘겨운 현실을 견디어 내고 큰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위의 시에 나오는 대로 "눈물 흘리는 학생을 붙잡고 같이 울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눈물'에 공감을 했고 함께 울며 소통했고 그들과 함께 연대했습니다. '공감과 소통을 통한 연대의 힘'으로 선생님은 떠나고만 싶은 현실을 이겨내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과 같은 분이 가장 낮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이를 글로 알려 소통하고 많은 사람들이 또 그 글에 공감해 연대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 낮은 자들은 낯설기만 했던 세상을 그들 자신의 고향으로 만들었고 그들은 그 세상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지금 서 있는 곳이 낯설기만 하고 떠나고만 싶은 분들은 선생님의 모범대로 자기의 삶을 있는 그대로 노래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노래를 부르는 이웃이 없는지 찾아보면 더 좋을 듯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공감과 소통을 통한 연대의 힘'은 자연스레 나타나고 우리는 살 힘을 얻어 지금 바로 여기에서 고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치규 선생 약력

 

청송군 부남면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정일학원 종로학원 강사

2017년부터 가족들과 귀향해 청송에서 교육봉사 및 음식 사업 중

저서: <성적역전 몸공부법>, <다시 개천에서 용나게 하라>, <삼국지 권력술>, <유방의 참모들>, <예수님의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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