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오치규 선생과 함께 읽는 이오덕의 시편 (3) 흔들리는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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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오치규 선생과 함께 읽는 이오덕의 시편 (3) 흔들리는 지구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12.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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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송이 낳은 문인 교육자 이오덕 선생님의 주옥같은 시편을 함께 읽는 연재 -

 

오치규 작가
오치규 작가

 

이오덕 선생님은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처럼 인간은 본래 '동심'을 타고났지만, 그 동심이 환경과 사회에 의해 파괴되어 타락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동심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교육과 문학의 몫이라 생각해 평생 그 분야에서 애쓰셨습니다.

선생님의 탁월한 점은 다른 사람들이 타락한 동심을 애써 부정하고 무시하며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만을 꿈꾸라는 '동심천사주의'를 주입하고 있을 때에 이를 배격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구차하고 저열하지만, 자신의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노래하라 권면했습니다.

세상을 그저 밝게 보려는 맹목적 '동심주의'나 '타협주의'를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선생님의 '현실주의적 이상주의'는 선생님의 시들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시를 가르치면서

시를 믿고

시에 기대어 살아가도록

나는 가르쳤다.

모두가

한 포기 풀로 한 그루 나무로

꽃으로

순하디 순한 짐승으로

자라나기를 빌었다.

그리고 헤어진 지 30년,

또는 40년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소식은 무엇이던가?

그들은 모두 어디서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하는가?

(이오덕 시 '흔들리는 지구' 중에서)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이 "한 포기 풀로 한 그루 나무로 꽃으로" "순하디 순한 짐승으로 자라나기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헤어져 30년 40년이 지난 후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합니다. 선생님은 고통스럽게 주목했던 '세 아이'의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이른봄

할미꽃 잎이 말라서

파 보니 노란 맹아리가 올라와

풀로 덮어 주었다는

그 아이는 국민학교를 4학년도 못 마치고

남의 집에 가서 식모살이를 하더니

소식이 끊겼다.

(위의 시 중에서)

청개구리가 올라 앉아 울고 있는 나무를

장난삼아 돌로 쳤다가

그 청개구리가 놀라 발발 떠는 것을 보고

죄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

하늘 보고 절했다는 시를 쓴 아이,

깊은 산골에서 겨울이면 하루 나무를

두 짐씩 하고

여름이면 또 풀을 몇 짐씩 베고

방학 때는 감자를 스무 짐씩 져 날라

그렇게 부지런하고 착하던 아이,

그 아이는 자라나면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라

믿었더니

여러 해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의 시 중에서)

"내가 군대에 가서 총에 맞아 죽을까 봐

걱정이 난다. 무서운 군대. 내 꿈에는

고마 군대 안 가고 고마 나쁜 나라와 우리나라가

같이 동무가 되었으면..." 하고 글을 쓴 아이도

그렇게 착하고 일을 잘하더니

30 몇 년이 지난 오늘은

어디서 또 무슨 괴로운 꿈을 꾸는가.

어제는 동창회 모임을 알리려고

10년 전에 살던 ㄱ시의 114를 돌려 전화번호를 물었더니

"×××란 사람이 ××면에 꼭 한 사람 있는데

전화번호를 알리지 않으려고

번호부에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했다

(위의 시 중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남이 가르쳐준 노래를 앵무새처럼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자기의 입으로 노래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때 그렇게 했던 아이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싹을 가진 아이들은 하지만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스러졌습니다.

한 포기 풀도 소중하게 여기던 아이는 국민학교도 못 마치고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는 식모가 되었고, 열심히 일하며 생명을 노래하던 아이는 시인이 되지 못하고 삶을 스스로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던 아이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안타까운 아이들의 전락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른봄 담 밑에 돋아나는 새파란 풀싹 같고

가을날 개울가에서 실비단 하늘빛으로 눈부시던 달개비꽃 같던

그 고운 마음들 다 짓밟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위의 시 중에서)

"그 고운 마음들 다 짓밟혀 흔적 없이 사라지고"만 현실의 원인을 선생님은 이렇게 찾고 있습니다.

시도 말도 죽어버린 이 쓸쓸한 땅 거친 벌판에

다만 약빠른 재주꾼들만 살아남아 선진 복지 관광 문화 국가를 외치면서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

(위의 시 중에서)

아이들을 짓밟은 것은 "약빠른 재주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지 관광 문화 국가를 외치면서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의 주인들이었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누가 아름다운 어린 생명과 동심을 짓밟고 세상을 황폐화시키고 거친 들판으로 만들었는지 말입니다. 이제 그들과 일전을 벌이는 투쟁을 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선택한 길은 그런 길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지키자고 말을 살리자고

지팡이 짚고 걸어가는 길이 왜 이다지도 어지러운가

멀미가 난다.

땅이 흔들린다.

지구가 흔들리는구나.

(위의 시 중에서)

"목숨을 지키자고" 선생님이 선택한 길은 '말'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실천적인 일을 많이 하셨지만, 특히 '말'을 살리는 데에 전념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말 바로쓰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글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글을 써서, 글로 움직이는 세상을 글로 바로 잡는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한 사람만 글을 쓰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농민도 노동자도 노점상인도 교원도 회사원도 주부도, 자기를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수단으로 글쓰기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선택한 길을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소수'가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다수'가 이야기하는 세상이 될 것이며 이야기의 독점이 사라지면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신념을 선생님은 가지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렵고 먼 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지팡이 짚고 걸어가는 길"이라 했고 땅이 흔들리고 지구가 흔들리고 멀미가 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길은 옳은 길이었고 선생님의 방법은 적실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고통스럽게 걸어온 길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고 말과 글의 민주화를 통한 정치와 사회의 민주화는 조금씩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우리들 자신의 삶의 민주화를 위해 우리들 자신의 노래를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들의 노래를 할 수 있는 많은 수단들이 존재하고 우리들의 글을 읽어줄 이웃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선생님이 힘들게 걸어온 덕분이라 저는 생각하며 이 긴 글을 지면에 올리고 여러 곳에 소개하게 된 것도 선생님 덕이라 생각해 감사하며 글을 맺습니다.

 

 

오치규 선생 약력

청송군 부남면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정일학원 종로학원 강사

2017년부터 가족들과 귀향해 청송에서 교육봉사 및 음식 사업 중

저서: <성적역전 몸공부법>, <다시 개천에서 용나게 하라>, <삼국지 권력술>, <유방의 참모들>, <예수님의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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