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꼰대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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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꼰대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10.16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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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86세)

 

잔 글자가 보기 힘겹다. 돋보기안경이 나의 주변에 동행한다.

언제인가 청각장애가 시각장애의 줄에 뒤따르던 때쯤 처음으로 꼰대라는 단어를 접했고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일어났다. 얼마 후 꼰대가 되지 않는 십계명을 접하면서 남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세상은 참으로 공평한 원리라고 믿었다. 누구도 세월의 무게는 공평하게 받게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미국 대통령에게도 영국 총리에게도 공평하게 숙주 하지만 노인을 차별하는 치명률은 노인들을 더 깊숙이 유폐시키고 말았다. 공평하지 못한 구석도 존재함을 알리고 있다.

젊은 친구가 노인을 꼰대란 이름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것은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는 노인들에게 어떤 학습을 요구하는 항변일지 모른다.

나에게 가장 만만한 친구가 우리 경운기다. 내가 힘들어 있을 때 언제나 내 곁에서 도와주고 힘겹다는 말 한마디 없이 늘 내 곁에 있던 경운기가 내가 꼰대를 알 때쯤 자주 피곤하다고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문가에게 의뢰해 손을 보았더니 움직임도 연하고 소리도 부드럽다. 시동 상태에서 풍기는 냄새가 고약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다행이다. 내 경운기는 이제 젊은 경운기로부터 꼰대 대접은 받지 않을 것 같다.

나도 경운기와 같이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을까?

인간은 육신과 정신이 결합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때로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영적(靈的) 동물이다. 영을 물체와 같이 교체하고 연마할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노인들이 그들의 관점에서만 젊은 세대를 바라보게 되니 젊은 세대는 은어(隱語)를 만들어 가면서 노인에게 꼰대라 한다. 물론 이들은 꼰대가 노인들의 육체적 쇠락을 지적하거나 노인을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비슷하다. 쓸모라는 기준에서 두 정체성을 바라보면 생산성이 적고 소진된 인간의 인격과 존엄은 관심 밖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니 노인세대의 말은 모두가 잔소리요 실리와 실용성이 없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이래서 세대 간의 간격은 더 멀어지고 그것이 가족공동체에까지 침투되어 부모에 대한 존경심마저 사라지고 가족의 해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고 있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의 고달픈 삶을 겪고 실리(實利)보다는 신의(信義)의 소중한 가치가 응축된 노인세대의 인생철학에 대해 젊은 세대가 시대 변천에 적응하지 못하는 꼰대라는 은어로 젊음의 발산으로 넘기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눈이 양쪽 좌우로 배치된 원리는 시야의 각도를 넓히고 직진을 할 때 안전하라고 조물주가 설계한 것이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면서 일부 젊은 세대는 어쩌면 보이는 것도 제대로 못 보는, 보이는 것만 보는 통찰이 없는 외눈박이일 수 있다.

지금의 그 젊은 세대가 노인세대가 되었을 때 그 밑 세대는 어쩌면 그들을 꼰대가 아니라 꽝!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꽝은 빈 털털이란 뜻이다. 그때에 가서 지금의 꼰대 시대를 숨 쉬는 철학이라고 표현할지 모를 일이다.

자식이 부모세대를 불신하고 학생이 선생을 불신하는 세상살이가 예삿일이 아니다. 꼰대가 젊은이의 은어로 넘기기에는 너무 무겁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와 정신유산이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져 나가는 현실에서 일시적 젊음의 유행의 일편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기성세대가 안타깝다.

 

참고 : 상기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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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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