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경험하지 못한 시공(時空)의 삶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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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경험하지 못한 시공(時空)의 삶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9.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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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회장(86세)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회장(86세)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짧지 않은 세월이란 뜻이다.

십 년의 시공에서 일어난 기후 이변이나 의식의 변화를 정리해 보니 우리들의 삶에서 대전환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세계가 우리의 촛불 혁명, 대통령 탄핵과 같이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변혁에 대해 예사롭게 보지 않고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지금 분명 소중한 정신문명과 가치를 버리고 방향 감각을 잃은 상태로 질주하고 있다.

우리 주변국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하나 짚어 보자.

일본은 어느 선진국에도 뒤지지 않는 지진에 관련된 매뉴얼을 자랑하고 있던 나라이다.

1995년의 고베 대지진에서 신칸센(新幹線)이 엿가락처럼 되었다.

어떤 지진에도 견딘다던 일본의 신칸센이 일본인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밟아버린 것이다.

일본은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여서 이를 대비한 시설에 오랫동안 투자하고 훈련된 나라지만 계속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경험은 큰 힘을 얻지 못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에 덮친 해일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탈원전 정책을 숙고하게 했고 몇 나라는 탈원전으로의 정책 전환을 하게 했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방파제 높이는 6m라고 한다. 대지진이 발생하면 최고 6m 정도의 해일이 원전을 덮칠 것으로 예상하고 당시 방파제를 그렇게 설계했을 것이다.

후쿠시마 해일이 15m가 되었다니 기존 방파제는 그 의미를 상실했다.

현재도 후쿠시마 원전의 후유증은 진행 중이다.

원전 사고 때문에 환경으로 배출된 방사성 물질은 우리나라까지 해류를 타거나 여러 통로로 침투해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해산물 수입과 후쿠시마 지방의 농산물로 만든 식품 수입을 통해 숨어들고 있다. 이 모두가 경험하지 못한 삶의 한 가닥이다.

2020년은 기후와 코로나19에서 경험하지 못한 삶을 견디는데 고전 분투하고 있다.

백세 노인도 올해같이 긴 장마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지구 상 인류가 처음 겪는 코로나로 인한 문명과 패턴이 백 년 전의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생활방식과는 동일시할 수 없다. 어쩌면 죽음의 공포는 지금이 적다고 할지라도 정신적 고통은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신의(信義) 중심사회가 실리(實利) 중심사회로,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되면서 부모봉양이란 의무감이 실종되었다.

그렇다고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짙어져 노인사회에서 슬픈 이야기가 이따금 흘러나오는데 정치권에서도 애쓰고 있는 사회적 문제 중 하나이다.

요즘 우리 생활 주변에서 효에 대한 화두를 듣지 못한다.

‘누구의 아들이 효심이 어떠하다느니’ 하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일도 별로 없다.

이 문제도 사회학적 분석으로 보면 경험하지 못하는 사회로 분화(分化)하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핵가족에서 젊은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확실성은 낮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서 아이들 처지에서 양육하기 때문에 만족할 수 있도록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와는 별거하는 젊은 세대는 노인세대와 가까이 접촉이나 대화, 공감하는 감정도 없이 살아가니 노인세대를 용도폐기로 바라보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숨어들게 되는 것이다.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 본능적이고 생리적 현상이다.

필자 주변에 독거 아버지를 봉양코자 귀농한 60대가 있다.

서울에서 하는 사업이 안정적이고 소득도 높지만, 아버지를 시설에 모시고 마음이 편치 않게 살기보다 고향에 오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아서 용단을 내렸다고 한다.

옛날 신의(信義) 사회에서는 아무런 화제 감이 아니다. 당연한 도리이니까.

그런데 요즘 주위에서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앞날에 우리에게 닥칠 변화가 큰 해일 같은 두려움이 있다.

가족공동체에서 마을로, 사회로 확대되면서 공동체의 소중함이 공감되고 그 안에서 모두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 하지만 이런 감성이 없이 내가 경험한 사실에만 묻히게 된다면 경험하지 못한 분야는 모두 배타적 대상이 되는 사회로 가면 국민의 반수는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내일모레 추석이 다가온다. 부모·형제를 만나고 고향 어르신과 친구들도 만나는 민족의 만남의 대향연이 축제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데 코로나가 가로막고 있다.

이 또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삶의 한 장면이다.

비대면이 방역에 중요한 수칙이 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고 대면이 실리적이지 못하니 이 또한 경험하지 못한 삶을 깊게 만들어 주고 있다.

노쇠한 부모와의 만남은 오랜만에 아버지 세대를 간접경험 할 좋은 기회이다.

경험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잣대도 되고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는 동기 유발의 기회를 잡게 되기도 한다.

이 소중한 만남의 기회를 통하여 아들 세대가 아버지 세대를 간접경험 하는 시간이 되어 우리의 소중한 효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경험하지 못한 시공을 짧은 시간에 체감하기란 역발상이 요구된다.

자신의 경험으로 아이를 돌보고 배려하듯이 역으로 내 아이가 아버지인 나를 어떻게 돌아보기를 원하는지 자신에게 반문해야 한다.

여기에서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고 반포(反哺)하고자 하는 싹을 키워야 한다. 노인에 대한 예우를 중요시함은 인간의 자존감을 소중하게 지키고 간접경험을 일깨우는 사회적 교육의 한 프로그램 역할을 하는 것이다.

4~50대가 중심이 되어 간접경험 운동을 통하여 경험하지 못한 삶의 시공을 극복하고 대전환의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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