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매정스럽지 않은 제비가족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상태바
[기고] 매정스럽지 않은 제비가족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7.02 1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른 봄 제비 두 마리가 우리 집 주위를 날면서 떠나가지 않고 며칠을 배회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제비를 보는 마음이 반갑고 고마움이 스쳐 갔다.

제비를 볼 수 없는 우리 농촌의 미래가 나의 애농 사상(愛農思想)을 짓밟기 때문인가?

며칠 후 현관 벽 쪽 코너에 흙을 붙이고 있다. 집을 지으려나?

관심을 두고 들락거리면서 쳐다보았는데 어느새 아담한 집을 다 지었다.

집 설계가 마음에 든다. 소박한 외형, 나와 자주 접하는 접근성, 어쩐지 나를 배려하는 듯하다. 문제는 분비물인데 받침대를 만들 걱정을 덜어주는 듯하다.

 

 

분비물이 조금씩 보이는데 다행스럽게 밑바닥 코너에 쌓여 출입에나 생활에 아무 지장을 주지 않을 것 같다. 어려운 일감이 사라져 다행한 일이라 생각을 했다.

제비가족이 강남으로 간 후 간단히 청소하면 될 것 같다.

아이는 아프면 성장하고 어른은 아프면 늙는다는 말이 있다.

제비가 올 때쯤 나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하루하루가 괴롭고 의료원 출입이 주요한 나의 일과인 시기였지만 하루도 제비집을 쳐다보지 않는 날이 없었다.

제비는 길조(吉鳥)인데 나의 건강을 도와주려나?

우리 주위에 제비를 보기가 쉽지 않다.

제비가 사라졌다는 것은 뭍 생명이 엮여있는 그물에 구멍이 났다는 의미이다.

코로나19가 바로 그 구멍 난 틈으로 들어와 인간에게 역습한 재앙이라고 자연 섭리로 풀이할 수 있다.

어느 날 새끼 제비 세 마리의 노란 입이 보였다.

옛날 어느 시절 생각이 문득 뜬다. 어린 손자가 주말에 ‘할아버지!’ 하면서 뛰어 들어오던 시절이 회상되어 잠시 새끼 제비에 눈을 떼지 못했다.

제비 부부가 부지런히 집을 짓고 알을 품고 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새끼 제비가 입을 쫑쫑 벌리니 모든 생물의 이치가 시공의 장단은 다르다 해도 소중한 과정과 모정(母情)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제비가 소중한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여지는 감성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때 200여 m 떨어진 사과밭에서 기계(SS기)로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 요란스러운 펜 회전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 귀를 울린다.

어미 제비가 그 밭 근처에는 가지 말아야 할 텐데 하며 허황한 걱정을 하는 내가 걱정스럽다. 의사로부터 초기 ㅊㅁ 환자 진단을 내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나의 건강상태가 많이 호전된 듯하여 약을 끊고 싶다 하니 담당의사는 좀 더 먹으라 한다.

우리의 기대수명이 85세, 건강수명은 65세, 20년은 약과 병원으로 오가는 골골 20년이란 뜻이다.

제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서 제비가 더욱 사랑스럽고 정겹구나!

인간의 지혜가 공존의 높은 가치를 저버리고 끝없는 함정의 절벽으로 달려가는 인간을 향해 무슨 언어를 줄 것인가?

아! 6월 17일 제비가 가버렸다.

매정한 놈! 가면 간다고 할 일이지!

다섯 식구가 몇 바퀴 비행 쇼라도 하고 간다 말이지 매정한 것들!

혼자 생각을 며칠을 두고 되씹었다.

21일 늦은 오후 세 마리가 어른 티를 내면서 집에서 가슴을 자랑이라도 하듯 펴고 나를 반긴다.

반갑다고 손뼉을 쳤더니 세 마리가 일시에 하늘 높이 날아갔다.

내 생각이 부족했구나.

어미를 따라 비행 연습을 늦도록 하고 잠자러 집으로 오는 것을 몰랐다. 오늘 밤에는 다섯 식구가 잠을 자기엔 옹색한데 걱정스러워 확인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새끼 제비는 안쪽에서 자고 제비 부부는 집 끝자락에 나란히 앉아 있다.

비행 연습에 열중해서 강남에 갈 힘을 길러야지!

내년 봄에 온다고 몸짓을 하고 가야 해. 알겠지?

섭섭한 마음이 사라지는 감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이것인가?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86세)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86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