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심종록 시인의 詩詩한 세상 읽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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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심종록 시인의 詩詩한 세상 읽기 1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5.0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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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사유의 푸른 빛, 서른 번째 조광기 화가 그림 전에 붙여-

 

어둠을 찢고 나타나는 빛을 응시한다. 저 빛을-칼라를- 어떻게 부를까. 이럴 땐 참으로 난감하다. 딱히 떠오르는 명칭이 없기 때문이다. 적당히 뭉뚱그려 ‘코발트색’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저 고귀하고 비밀스러운 새벽빛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는 저 빛에 의지해 몸과 마음을 몰입한다. 문을 닫아걸고 깊은 삼매에 들어간다. 오래 길을 걸어 지금 여기에 도달한 구법승처럼. 어느 날 굳게 닫혔던 문이 덜커덕 열린다. 그의 손에 푸른빛의 커다란 그림이 들려 있다. 그 그림의 이름을… 이름은… 청산사유靑山思惟다.

조광기 화가의 <청산사유>는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온다. 어떤 사람은 청산이라는 말만 듣고서도 흥얼거리리라. 세상 번뇌 시름 모조리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고. 또 어떤 사람은 청산이라는 말속에서 딥 블루 Deep Blue의 오만하고 냉철한,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를 읽어낼 수도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청산이라는 의미 속에서 감히 범접하지 못할 신성을 발견하고 겸손히 무릎을 꿇을 수도 있다. 그가 새롭게 선보이는 몇 개의 그림에는 차올랐다가, 만월이었다가, 기우는 달이 등장한다. 고고한 달이 내려다보는 청산은 신비롭다 못해 오싹한 한기까지 느끼게 한다. 인간 존재가 감당할 수 없는 절대 신성의 영역일까 아니면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가 군함 말리(軍艦茉莉)에서 누이를 잃고 약에 취해서 노래하는 비극과 허무 세계의 표현일까.

 

 

파란색은 공간이 아득하게 깊고 투명해져야만 나타나는 색이다. 깊은 바다가 파랗게 보이거나 먼지 하나 없이 맑은 날 밤 올려다보는 밤하늘이 검정에 가까운 짙은 청색인 것은 모든 색이 파랑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밤이 파랗게 빛나는 이유도 동일하다. 그런 이유로 옛날부터 파란색은 신성하게 여겨졌고, 독야청청 멀고 높은 허공에서 하얀빛을 흩뿌리는 달은 순수와 순결과 기복의 상징물로 대체되곤 했다.

 

 

이로서 유추해 보건데 청산에 달이 떠 있는 그림은 화가의 내적 갈망이 담긴 내면의 독백이자 종교적인 신앙고백이 아닐까. 청산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변하여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형상화한 그림을 보면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과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빠지자. 1901년 몽마르트르의 한 카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가 술을 마시던 도중 권총을 꺼내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피카소는 돌발적인 친구의 자살에 경악했다. 당시의 절망감과 슬픈 감정을 피카소는 단 한 가지 색으로 표현했는데, 다름 아닌 청색이었다. 그 시기 피카소가 그린 절망적인 푸른 색조의 그림을 ‘청색 시기’의 그림이라고 하는데, 이번 전시가 30번째 개인전이자 미대 졸업 후 연 첫 전시회로부터 어연 30년째라는 조광기 화가의 청산사유(청색시대)는 피카소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다. 근원적 비애를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신령스럽고 힘이 넘친다. 30년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그는 몇 차롄가의 암중모색을 시도했을 것이고 그 결과로 이제 그만의 청산사유를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갈 것이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심정으로 더욱 용맹 정진할 것이다. 여기서 만족하고 안주하여 변하지 않으면… 퇴화고 죽음이다. 바보야!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자꾸자꾸 새롭게 변해야 사랑인 거야.

 

심종록 시인

 

 

경남 거제 출생

1991<현대시학>으로 등단

장편소설 모리티우스를 찾아서

시집 는개 내리는 이른 새벽

시집 쾌락의 분신 자살자들

전자시집 빛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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