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정의 달 5월 (배용진 전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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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정의 달 5월 (배용진 전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5.0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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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86세)
배용진 전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86세)

 

5월은 우리 민족이 5.18의 부채감을 간직하고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만들어 해원(解寃)하고자 하는 한 맺힌 계절이기도 하다.

그 길에 겹겹이 쌓인 장애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

또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국가조직의 세포이다. 가정이 잘못되면 국가가 잘못되는 것이다.

광복 이후 서구 문명과 자본주의 체제가 도입되면서 우리의 전통과 관습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국적불명의 문화가 우리 생활문화로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쉽게 버리고 버려야 하는 것은 죽기 살기로 잡고 늘어졌다.

한 역사적 사례를 적어 보자. 일본과 우리는 같은 음력권이었다. 일본이 서구식 근대국가체제를 도입하면서 태양력으로 바꾸는데 불과 10년이 걸렸다. 음력설 관습 전통놀이를 완전히 양력으로 이식하여 지금까지 일본은 그들의 설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달력에 우리와 같이 음력이 기재되지 않았다. 섬나라는 바닷물과 관계되는 음력이 꼭 필요한데도 어민을 위한 달력을 따로 마련하면서 음력을 폐지했다.

우리는 고종황제가 태양력을 선포한 지 100여 년쯤 노태우 정부에서 음력설을 공식 설로 정했다. 그러니까 백 년 만에 도로아미타불 한 셈이다. 일본 강점기 항일의 저항을 인정하더라도 현재의 우리 교육 수준과 사회의식으로 공식 설을 음력으로 두어야 할 것인가?

생일도 제삿날도 농민들 파종일도 새해 해돋이도 양력으로 하면서 굳이 설만은 음력으로 하자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음력설을 폐지할 이유도 없다. 자유롭게 양력이든 음력이든 국민이 선택하도록 하고 공식적 설은 신년 1월 1일로 함이 국가가 해야 할 책무이다.

교육적으로 문제가 적지 않다. 사전적으로 보면 2세들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신년 연휴도 3일 연휴를 인정하고 어느 시점에 음력설은 민속의 날로 남겨둘 시기가 오게 된다.

개천절 한글날은 양력으로 전환됐고 추석만은 달을 중심으로 한 우리 문화의 하나로 지키는 것도 멋이 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받을 때 필자는 효(孝)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효의 가치를 삶의 으뜸으로 숭상하던 우리 문화는 후진성이며 비효율로 밀리면서 시대에 맞게 현대화한다는 것이 전파 효(電波孝, 전화를 자주 하는 효도) 계좌 효(計座孝, 용돈 자주 올리는 효도) 양노 효(養老孝, 시설에 편히 모시는 효도)가 대한민국의 표준 효가 되고 말았다.

현대화된 효가 진정 효의 최선이 될 수 있는가?

효의 최선은 가족공동체가 함께 살면서 정다운 온기가 오가는 가운데 효라는 감성과 정서가 생겨나는 교육적 환경에서 진정한 효가 함양되는 것이다.

사회구조와 산업문명이 핵 가정으로 갈 수밖에 없고 가정, 가족이란 개념도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버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 현실이다.

절충된 차선으로 전파 효, 계좌 효, 양노 효로 가게 된 것이지 그것이 효의 정답이 될 수 없다.

가족의 개념도 조금은 바뀌고 있다. 혈연이 아니라도 뜻이 맞아 함께 살면 가족으로 봐야 하는 시대가 왔다.

함께 사는 가족만큼 따뜻한 사회안전망이 어디에 있겠나?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우리 집에 어떻게 오셨어요?

이 말은 할아버지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 진정한 효가 함양될 수 있겠는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우리나라의 원인을 찾아보면 첫째가 농촌 붕괴 때문에 효의 모델이(부모 봉양 가정) 사라졌고 두 번째가 자식들이 살기가 너무 바빠 부모를 기억하고 염려할 여유가 없는 자본화 사회의 시스템이다. 세 번째는 공감능력을 감퇴시키는 자본논리가 감성을 퇴락시켜 노쇠한 부모를 용도 폐기되는 공산품으로 인식하게 되는 자본논리의 황폐한 정신상태가 일상화되고 말았다.

언제인가 효도법을 만든다고 했다. 효도가 법으로 되는가?

부모의 재산은 취하고 은혜를 저버리는 화폐 동물(貨幣動物)이 된 인간들 때문에 거론된 것이다.

서구의 효의 개념과 우리와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사회안전망 즉 노후복지정책에서는 다르지 않다.

독일의 농촌 사례를 소개하면 자식 하나는 농촌에 살기를 부모가 원한다. 정부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농업을 경영하는 농민에게 많은 혜택을 제도적으로 법제화되어있다.

그것만큼 노후에 좋은 복지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경험과 아들의 신기술이 결합하여 안정적인 경영과 소득이 향상되는 이득도 있다. 반대로 자식이 농업을 포기하고 농지를 매도하면 세금을 부과한다.

이런 정책으로 저출산을 막고 노후의 고적(孤寂) 과 외로움을 줄이고 가족의 소중함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고 체득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범죄의 증가도 막고 안정된 사회가 존속하게 된다.

농촌에서는 어렵지 않게 성공할 수 있는 정책이고 행복한 가정의 롤 모델이 되어 도시에서도 도시형 행복한 가정이 전파될 수 있다.

같은 아파트 아래, 위층에 부모님과 함께 사는 반포의 가정(反哺之孝)도 생각해 보자.

이것이야 말로 일석이조의 정책이 아닌가?

우리 농촌은 지금 하루가 무섭게 무너지고 있다.

손발이 마비되고 혈맥이 정지되면 이어 심장이 정지되는 것이 생명체이듯이 국가도 농촌을 이대로 두고 경제성장으로 선진국을 논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백 년을 바라보는 진정한 지도자가 없음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깊은 고뇌를 해 보자.

우리 것은 모두가 미개하고 후진성이고 비효율인가?

버려야 하는가 아니면 현대와 절충할 묘안은 없는가?

유럽의 여러 나라가 자본주의 역기능에 대처하고 오늘과 같이 안정된 사회로 더불어 살아가는 동력이 농촌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필자는 수차 거론했지만,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삼농정책(농사짓기가 수월해야 하고, 농업의 수익성이 높아야 하고, 농민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돼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버렸는데 중국, 독일, 쿠바, 서구 여러 나라는 다산의 삼농을 자기들 식으로 적용하여 국가를 안정시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숙의 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에 터를 닦은 나라가 아닌가? 우리 모두 5월 가정의 달에 가정은 국가의 세포임을 함께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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