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기에 실력이 드러난다(강미숙 프리랜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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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위기에 실력이 드러난다(강미숙 프리랜서 강사)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3.27 23: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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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프리랜서 강사
강미숙 프리랜서 강사

 

요즘처럼 위기에 실력이 드러난다는 말이 실감 나는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일은 없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선행학습을 시키지만, 선행으로 오른 성적은 토대가 허약해 생명이 짧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인 관점을 종적, 횡적으로 교차하며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임을 강조해 왔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지나치게 미시적이거나 역사 철학이 배제된 것이어서 9주 5 소경이니 대동법이니 하는 앞뒤 맥락 없는 낱말들만 남아있었고 미안하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건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의 광각 기능과 접사 기능을 번갈아 사용해가며 사건을 보는 연습을 시키려고 노력했다. 그것을 보다 과학적으로 보기 위해 온갖 학문이 필요한 것이고 말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물어올 때 꼭 추천하는 책 중의 하나가 『떡갈나무 바라보기』다. ‘동물들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개개의 동물들이 경험하는 주변의 생물 세계를 ‘움벨트’라는 말로 설명한다. 땅속에서 애벌레로 7년을 살다 성충이 되는 매미의 하루와 인간의 하루는 어떻게 다른가, 개미가 보는 세상과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저마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갖고 있다는 것, 나의 관점을 벗어나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과 자연을 보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자연을 인간의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외눈박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 관점을 달리하면 오류를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 준다.

외국에서는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코로나 19에 대처할 수 있었냐 놀라지만 사실 이건 우연이나 거저 얻어걸린 게 아니라 2003년부터 18년 동안 준비해온 결과다. 2002년 중국에서 사스(SARS·중증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발생했을 때 노무현 정부는 총리를 컨트롤타워로 선제적인 방역을 했고 감염자 3명, 사망자 없음으로 WHO로부터 감염병 예방 모범국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감염병에 국가가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국의 질병예방통제센터(CDC)를 벤치마킹한 질병관리본부를 만들고 당시 미국 CDC 예산의 550분의 1에 불과하던 국립보건원 예산을 경제관료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대통령의 권한으로 대폭 확충했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모든 경험을 매뉴얼화하는 것이었고 나도 누가 권력을 잡아도 쉽게 돌이키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은 늘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는다.

2009년 신종플루(H1N1)가 유행했을 때 이명박 정부는 질본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선제적 대응에 실패, 결국 70만 명 감염, 260명 사망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2012년 사우디에서 메르스(MERS·중동 호흡기증후군)가 발생, 2015년 국내 환자가 발생할 때까지 무방비였던 박근혜 정부는 컨트롤타워도 감염자 정보공개도 하지 않고 세월호 때처럼 은폐와 무능으로 일관했다. 당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던 나는 전국의 수많은 기저질환자가 드나드는 대형병원마저 어떠한 감염병 대책도 없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대응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결국, 메르스는 감염자 186명, 사망 39명으로 세계 2위 발병국이라는 오명을 썼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질본을 다시 재정비하고 관련 법제를 정비하는 등 과거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놓은 매뉴얼을 보강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독립하여 전염병 감시, 백신 개발, 방역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지원한 결과가 코로나19를 만나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쩌다 얻어걸린 세계 최고의 코로나 방역 국가가 아니라 철저하게 오답 노트까지 만들어가며 준비했기에 여유 있게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좋은 성적은 좋은 머리가 아니라 기초를 튼튼히 하고 필요한 예산도 지원해주어 신명 나게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 집단은 한국인 특유의 ‘신명’ 정서가 더해져 몇 가지만 충족되면 영혼도 갈아 넣을 만큼(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헬 조선이라며 선진국을 선망하던 게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우리가 그들을 쳐다보며 조금씩 개혁해온 만큼 그들은 공공의료 투자를 축소하고 의료 안전망을 시장에 맡겨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어젯밤 대한민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G20 특별 화상 정상회의가 열렸다. 주객관적인 조건상 회의는 한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극우세력들은 정부를 어떻게든 깎아내릴 생각에 기업이 잘해서라는 둥 공무원들이 잘해서라는 둥 스스로 자신의 좁은 움벨트를 부끄러움도 없이 쏟아낸다.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국민에게 외눈박이가 되라고 강요하는 파렴치한 말종들이다.

지렁이에서 도마뱀쯤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구렁이었다. 개도국 한국의 경제성장을 박정희가 한 게 아니라 풀빵으로 때우던 여공들과 수많은 전태일이 한 것처럼 성숙한 한국은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과 전문가 집단이 해온 것임이 확인되었다. 좀 더 나은 사회로 나가려면 우리가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 어느 부분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 의도치 않게 고액 족집게 과외를 받았다. 이제 검찰과 언론개혁, 노동개혁, 정치개혁, 공공복지 확대 이 몇 가지만 해내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 공부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국·영·수만, EBS 교재만 공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할 프롤레타리아 개미군단을 양성하기 위한 근대교육은 끝났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의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게 공교육의 책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필요 없다는 선언이 나오기 전에 스스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가 없는 세상은 어쩌면 훨씬 빨리 도래할지도 모른다.

 

참고 : 상기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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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환 2020-03-28 19:48:03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우리고향 청송에서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코로나19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두가 합심 이겨내고 지구촌 모범이 되는 대한민국, 청정 청송에서 살고있는 자긍심과 자부심이 지닌 보편적인 가치를 모두가 향유할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김도한 2020-03-28 10:24:27
좋은 정보 좋은 글 유려한 문장 감사합니다
어서빨리 이곳 청송에도 좌빨 빨갱이 운운하는
구석기시대의 독재정권에서나 사용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리와 합리를 추구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유식한 사람들로 가득한 청송 산소카페가
어서 빨리 되길 바라면서 좋은 글에 감사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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