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본전 장사는 하고 살자(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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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본전 장사는 하고 살자(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3.2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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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86세)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86세)

 

지금은 시도 때도 없지만, 전통적으로 우리의 결혼철은 봄과 가을이다. 올봄에 국수를 먹겠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옥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심각한 지점에 와 있다.

합계출산율 0.9명이란 기사를 보고 내 주위를 둘러보니 본전이 안 되는 가정이 뜨문뜨문하게 보인다.

‘원숭이가 나무에 떨어져도 호사는 공짜로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본전은 넘었다'는 말이다. 원숭이는 떨어져도 아무런 상처를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남녀가 만나서 하나를 낳으면 50% 밑진 장사를 했다.

이것이 쌓이면 인구 IMF 사태가 온다. 이미 우리는 외국 노동자가 아니면 농사마저 어렵게 되는 현실이다.

과거 프랑스가 저출산의 위기를 탈출한 정책자료를 모아보고 우리가 참고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현실 여건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문제는 국가 경제력인데 이 문제를 국민과 국가가 잠정적으로 분담하면 어떨까? 국가는 다산(多産)을 위한 정책에 미봉이 아닌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 투자하고 국민은 자녀가 최소 둘이 되어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책 부분은 접어놓고 다산과 행복이란 주제로 정리하고자 한다.

옛날 옛적 엄격한 가정교육과 가족 간의 화합과 우애를 중시한 할아버지 시대에는 무남독녀(無男獨女)의 혼인을 그리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미신적인 유래가 있거나 고적(孤寂)함이 흠 된 것은 아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한 더불어 살아가려는 ‘공감능력’이 혼자 크는 아이에게는 함양되기 어렵다는 것을 할아버지의 긴 인생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형제가 함께 자라면 형이 아우에게 져 주고 양보한다.

부모는 그 형을 칭찬해주고 보듬어준다. 아우는 그것을 보고 형이 나에게 져 준 것을 알게 되고 그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칭찬받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우가 무엇을 배울까?

나도 형에게 양보해야지, 져 주어야겠다고 생리적으로 뇌에 입력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간성이 형성된다.

학교나 유치원에서 그러한 교육이 조금은 영향을 주지만 다자녀 가족 간에 형성되는 정서나 심성발달에 주는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다. 다자녀 가족 간은 갑과 을의 관계가 서로 교차하기 때문에 갑의 심정, 을의 심정 모두를 체험하고 자라면 훗날 양보하고 설득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홀로 자라는 아이는 늘 갑의 위치에서 자라기 때문에 성장해서 양보심도 부족하고 공감력도 떨어지고 잘못했다는 말은 절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핵가족에서 오는 이점이 사회의 경제적 문제, 빈곤문제, 교육문제에는 공헌했겠지만 지금과 같은 본전 안 되는 핵가족을 막는데 사회적 간접 부담을 엄청나게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심성이 없는 사회는 범죄가 증가하고 공감력 부족한 사회는 GDP가 높아져도 사회보장정책으로 비극적인 삶을 막을 수 없다. 우리가 자살률이 높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천박한 자본주의로 제어 없이 달려가는 현실속에서 더불어 살고 공감하는 2세를 키우지 못하면 경제가 아무리 성장한다고 해도 마피아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좀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우리 사회 모두의 행복을 위해 본전 장사는 하자고 필자는 젊은이 앞에 호소한다.

다산을 위한 정책을 질타하고 비판한다면 필자는 전적으로 젊은이 편에 서고 싶다.

언론에 보도된 통계를 보고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할 문제라고 느낀 것은 바로 여성 50명 중 20명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직장, 출산 등 결혼하면 여자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미의 삶에서 보면 어머니의 기능과 전공 등 어머니만 손해를 보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유교적 부계사회의 불평등이 젊은 여성에게 아직 깊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다행한 것은 남성의 절반 이상이 평등한 삶을 지지하는 추세라니 희망적이다.

분명한 것은 다음 정부에서 저출산 문제가 중요 정책과제에 진입할 것으로 확신하는 여러 조짐을 볼 수 있는 것은 희망적이다.

중국이 ‘한 자녀 정책’을 철회했다.

중국의 농민공(農民工)은 우리의 이농(離農)과는 다르지만, 농사일을 가족에게 맡기고 도시로 돈 벌러 가는 것인데 사회주의 국가지만 강제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200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이 충정으로 상소한 삼농(三農) 정책(농사짓기가 편해야 하고, 농민들이 잘 먹고살아야 하고, 농민의 지위를 향상해야 한다는 정책)을 우리는 외면했는데 중국이 가져가서 농업위기를 막았다.

독일도 다산 선생의 삼농정책을 독일식으로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저출산을 단순한 인구감소 때문인 산업의 생산성 관계로 보면 안 된다.

미래 과학이 인간을 대신할 산업생산을 맡게 되면 차세대는 자연스럽게 웰빙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성이 보편화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웃이 있을 때 우리가 희구하는 진정한 웰빙이다.

지금 좀 어렵다고 다산을 피하면 진정한 행복도 웰빙도 얻을 수 없으므로 본전 장사를 하고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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