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의견) - 울타리 붙잡고 운다는 계절(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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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의견) - 울타리 붙잡고 운다는 계절(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3.2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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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87세)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회장 (86세)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우주여행을 한다지만 창조주의 섭리를 앞지르지 못한다.

계절 변화와 인간과 자연 관계에서 숙연해지는 일이 일상에서 없는 곳이 없다.

추분(秋分)이 지나면 밤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봄부터 여름까지 땀 흘리고 부족한 잠을 짬짬이 낮잠으로 때우면서 일한 농부에게 가을 추수가 끝나면 잠을 푹 자도록 시간을 배려해주고 있지 않은가? 가을엔 빗물도 참아주고 건조도 도와주고 있다.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옛 할머니가 삼신할머니에게 손자가 잘 자라도록 정화수 떠 놓고 손을 비비면서 하는 말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해 주소” 한다.

하지만 먹고 놀도록 해 달라고 빌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동물은 잠을 잘 때 면역력이 강화되는 것을 자연에서 배운 것이다.

동지(冬至)가 될 때면 밤이 한껏 길어져 농부는 쌓였던 피로가 확 풀리고 영양도 축적되어 지난여름에 비해 훤한 자태로 딴사람이 된다.

그러다가 춘분(春分)이 다가오면 고된 농사일이 마음을 무겁게 하여 일꾼들이 울타리 붙잡고 우는 2월이란 말을 했다.

필자는 농경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은 양지쪽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싶은 심정으로 다가오는 영농을 걱정할 것이다.

농업경제의 원론은 농산물에 대해 “판매가-투자=이윤”의 공식에서 이윤이 제로이거나 마이너스가 농가경제의 현실이다.

그래서 담벼락에서 울고 있다.

그 조짐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할 것 같다.

WTO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에서 제외되면서 관세가 낮아지면 주곡인 쌀농사는 무너진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과잉 생산된 과일, 채소의 수입으로 인해 농촌에는 젊은 농부가 점차 줄어들고 대신에 거대한 양로원이 형성되면서 시간이 가면서 농촌은 소멸이 되어 읍면 소재지 정도나 인적이 있는 마을로 남게 될 것이다.

현재 정부가 장기적으로 대비하는 사업이 농지를 국가에서 매입하는 정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농업을 포기하고 농민을 '안락사'시키는 것이 우리나라 농업정책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그 많은 농학박사, 경영학 권위자가 현존하면서 농업회생이 국민건강 및 행복과 직결되어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고 알면서도 묵묵부답이면 곡학아세의 무리들이다.

사법개혁을 부르짖는 군중을 보면서 농업회생이 사법개혁의 뒷자리에 있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사법개혁 이상으로 국가 미래를 위해 농업회생 정책을 마련하는 정당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하는 정당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직불제를 도입했다. 당시 IMF를 수습하면서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에 적극 참여한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께 직불금이 껌값이라고 격려성 농담을 건넸을 때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커질 겁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앞으로 김대중과 같은 농업회생을 걱정하는 대통령이 나올까?

걱정된다는 말을 하면서 당시 국무회의 분위기와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들려주었다. 그 후 20년 동안 농민 소득을 겨우 5%로 키웠다는 것은 역대 정부가 농업을 보는 의식과 철학이 얼마나 빈약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법화경에 나오는 불난 집이라는 뜻인 화택(火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영국은 2차 대전 이후 모든 신민지들이 독립해나가자 식량자급도가 100% 미달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 영국의 경제정책이 식량정책 우선으로 식량 자급도 100%가 되고 난 다음 경제성장정책에 페달을 밟았다. 영국이 왜 그 정책을 폈는지 우리 지도자가 학습해야 할 대목이다. 불세출의 영웅인 베트남 호지명의 머리맡에는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가 항상 있었다는 사실도 우리 지도자는 알아야 한다.

세계 선진 수준 국에서 식량자급도가 30% 미만 국가는 우리와 일본뿐이다.

일본은 해외에 자국과 연계한 농지를 보유한 비상대책이 있다. 우리는 식량 소동이 나면 하루아침에 국가에 대란이 일어난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앞으로 식품 안전성에 위험수위는 이미 넘어서고 있는데 점차 더 심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식품 안전성은 질병과 연결되고 국민행복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울타리를 잡고 울고 있는 농부의 괴로움이 농부의 괴로움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울타리 잡고 울고 있는 농부이다.

내가 농부라고 생각할 때 길은 있다. 이것이 대자연의 원리고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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