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의견) - 철학과 영혼이 충만할 때(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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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의견) - 철학과 영혼이 충만할 때(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회장)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2.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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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회장(86세)
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회장(86세)

 

부남면에 사는 박천수 씨가 청송군 인재육성 장학금으로 500만 원을 쾌척했다는 소식을 지난 2월 10일자 본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필자는 그가 부농도 아니고 부부가 알뜰하게 영농하는 순수하고 올곧은 농민으로 봐왔지 철학과 영혼을 갖고 살아가는 이웃임을 몰랐음이 죄스러울 뿐이다

그 후 박 씨를 만났다. 고맙고 대단한 일을 했다며 그의 뜻을 극찬하고 서로 간의 지난 일을 털어놓고 대화를 했다.

그의 대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데 이번에는 신문에 공개되어 여러분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나니 쑥스럽다고 했다.

아내는 일이 터질 때면 또 하면서도 적극적인 저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남을 위해 도움을 주면 신바람이 나서 건강해지는 것 같고 웃음이 이어지는 모습에 본인이 질 수밖에 없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2남 1녀의 자녀가 다 성공한 위치에서 사회에 공헌한다니 얼마나 행복할까? 장남은 대기업의 핵심분야 부장급에서 인정받는 인물인데 늘 아버지 하시는 일이 옳다고 박수를 보내니 나에게는 큰 힘이라고 했다.

박 씨와의 대화에서 필자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재물이 내 호주머니에 있다고 내 재물이 아니다. 내가 쓸 때 내 재물이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했다고 한다.

“나의 관 양 옆에 구멍을 뚫고 나의 두 손이 보이게 하라. 그리하여 천하를 쥐었던 알렉산더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이게 하라”

박 씨 삶의 철학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고 살아오면서 체득한 철학과 영혼 세 가지를 털어놓고 싶다.

첫째, 불가(佛家)의 이타(利他), 이기(利己)의 철학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다.

이타가 이기가 되는데 시차의 길고 짧음은 있다. 반드시 이타가 이기로 돌아온다는 철학인데 나의 긴 시공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요즘 지상에서 온통 4.15 총선과 코로나-19 기사가 도배한다.

한 때 국가 지도자급에 우뚝 솟은 지도자가 이타, 이기를 거꾸로 해석하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장하고 정치적 선동에 앞장섰다가 민심에서 멀어지는 기사를 볼 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타이기 실천철학이 우리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현실에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둘째,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지상에 두면 좀 쓸고 녹 쓴다.

성서에 있는 구절이다.

이 뜻은 교회에 헌금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돈이 없어 향학열을 접는 이에게 돈을 주어라.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웃에 돈을 내놓아라.

천재, 인재를 당하여 떨거지가 된 이웃을 보고 외면하지 마라.

교회에서 사회적 구호나 이웃 돕기에 솔선하는 것이 바로 이 구절이 아닌가 서툰 해설을 해본다.

필자가 아는 부자 셋집이 모두 아들 대에 빈 털털이가 되는 모습을 봤다. 공통점이 베풀지 않았고 후대 넘기면 반드시 보존할 것이라고 맹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부자는 동생에게도 소작을 주지 않았다. 소작료 받기가 민망해서일까?

셋째,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진정한 친구란 그 정의(正義)가 무엇일까?

쉽게 답하기 어렵다.

“친구 간에 갖는 공감의 폭과 깊이 그리고 신뢰와 베푸는 정감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고 정의해 본다.

일본 강점기에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 이야기다.

여러 학생이 조서를 받는다. 그때 한 친구가 자기가 주모자라고 고백하고 다른 친구는 석방하라고 한다.

진짜 주모자를 보고 “너는 가담도 안 했는데 왜 여기 왔느냐”라고 의아스럽게 바라보면서 “너의 모친이 위독한데 왜 사실대로 고백하지 여기에 머물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눈치 차린 친구는 경찰에게 말했다

“나는 가담은 안 했지만 빠지자니 비겁한 것 같아서 함께 행동했다”라고 하니 “바보야, 나가!” 하고 경찰이 소리 질렀다

2년이 지났다. 졸업을 앞두고 운동조직을 주동하다 다시 들어갔다.

그때 2년 전 사건의 주범은 나니까 나에게 중벌을 내리고 그 친구를 석방해 주라고 경찰에 간곡한 청원을 했다.

형무소에 있는 그의 친구를 재조사해 보니 사실이었다. “그 친구의 모친이 위독했다. 외아들을 감옥에 보내면 모친은 죽을 수밖에 다른 길이 있겠나? 그래서 내가 주범이 된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당시 일본 사법 책임자는 조용히 처리했다. 앞 친구는 석방하고 뒤 친구는 3년형을 받았다.

비록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본이지만 진정한 친구애에 감동되었지 않겠나 추리되는 사건이다.

진정한 친구가 쉽지 않은 것이 자신의 부덕인가? 인간의 정신 세계를 폐허 시키는 자본논리의 산물인가?

언젠간 철학과 영혼을 충만 시켜야 하는 절벽에 닿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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