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필) - 잘 내보내기만 해도(서승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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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수필) - 잘 내보내기만 해도(서승희 작가)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1.22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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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저녁 우리 동네 돈가스 집 ‘가츠동’에 갔다. 다들 도시 어디론가 갔는지 텅 빈 가츠동이 우리를 반겨주니 좋았다.

오마나, 아무도 없네!

주인 눈치도 없이 나온 이 말이 뒤늦게 미안해졌다.

제일 안쪽 큰 탁자를 차지하고 앉으니 좀 뿌듯하기도 했다. 널널한 게 가츠동 전체를 우리가 전세를 낸 느낌이었다.

치즈돈가스와 냄비우동, 모둠 떡볶이를 시켰다. 둘이서 3인분 시켜서 푸짐하게 먹었다.

먹기 전에 딸은 화장실에 한 번 갔다 왔는데 나는 그다지 생각이 없었다.

다 먹고 마트에 들러 콩나물과 김자반, 두부를 사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읔!

갑자기

똥이 쌀 것 같았다.

느낌 상 설사는 아니고 아주 굵직한 것이 엉덩이에 걸려 있어 보였다.

가츠동에서 딸이 화장실 갈 때, 마트에 들렀을 때 신호가 조금이라도 왔다면 좋았을 것을 뭔 놈의 똥이 이다지도 예고도 없이 콱 내리치듯이 오단 말인가.

아 ~ 어쩌란 말이냐 묵직한 엉덩이

아 ~ 어쩌란 말이냐 예고도 안 하고

참고로 한 달쯤 전에 계단에서 굴러 복상 씨 뼈에 금이 가서 그때 기브스를 하고 다니고 있었다. 똥이 튀어나올 것 같아도 뛸 수가 없다. 힘을 많이 주면 씨큼 찌릇 뭉클뭉클 발이 아파서 살짝살짝 땅에 대어야 했다. 입맞춤으로 치자면 살짝 뽀뽀하듯이 말이다. 꾹꾹 눌러댈 수 없으니 절뚝절뚝 거리며 조심조심 걸었다.

발은 조심조심 디뎌야 하고, 똥은 KTX급으로 빠르게 풍덩 내려와서 똥 구명 역에 딱 떨어졌다.

아 ~

아 ~ 으

으 ~ 으

"엄마, 괜찮아?"

"으 ~ 괘 ~ 엔 ~ 차 ~ 나."

"아 ~ 흐 ~ 으."

"엄마 어떡해? 괜찮아?"

'아, 진짜, 니가 괜찮아 괜찮아 물으니 더 안 괜찮다, 쫌 가마 있어라.'라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나 급해서 그 말도 안 나오고 그저

아 ~

우 ~

아 ~ 우

만 나왔다.

집 근처 사과즙 짜는 가게 앞쯤에서

"으아아아아 아우 우우우우우우우"

괴성을 지르니

"엄마, 고정해. 엄마 체면을 생각해야지. 엄마, 정신 좀 차려!" 하는 딸의 말이 우습지도 않았다.

아 ~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엉덩이 까고 주저앉을 데 없나 하고 말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데는 없고 그저 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딸이 얼른 뛰어가서 현관문을 열어놓고 나는 부지런히 걸었다.

집에 가니 화장실 문도 활짝 열려 있어서 바로 직행했다.

 

아호

똥만 제때에 잘 눠도 얼마나 행복한지.

세상만사 다 편했다.

 

서승희 작가
서승희 작가

 

서승희 작가

전 늘푸른 독서회 회원

현재 청송읍 금곡리에서 창작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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