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喝采에 대하여 (성악가 송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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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喝采에 대하여 (성악가 송현상)
  • 청송군민신문
  • 승인 2020.01.03 15:0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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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채는 칭찬의 적극적인 표현이다. 人間이란 말은 人生世間의 줄임말로 사람이란 결국 관계성 속에서만 그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터이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시와 소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그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기를 썼던 적이 있다. 아무도 보여주지 않고 나만 읽을 수 있는 일기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마음속에 있는 것을 文字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쪽에 먼 훗날 누군가 혹시 이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장의 품격에 신경을 기울였던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이내 일기 쓰기를 멈추었다. 년 전에 어떤 여성 시인의 시에 자기는 외출할 때 흰 바탕에 예쁜 물방울무늬가 있는 팬티를 입을 거라며 혹시 교통사고라도 당하여 다른 사람이 자기의 팬티를 볼 수도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그렇다는 내용을 보고는 그 솔직함과 순진함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던 기억이 난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은 알렉산더 대제가 “현자여,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을 때 지금 당신이 가리고 있는 햇빛이 필요할 뿐이라고 꽤 담대한 말을 했던 그는 세상 일반 사람들이 추구하던 가치와는 다른 것을 추구하였지만, 그는 진정 다른 이의 인정이 전혀 필요치 않고 홀로 스스로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자유의 가치는 구속이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삶의 이율배반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아닐까? 사견이지만 디오게네스 역시 비록 그 정도는 다를지언정 타인의 인정이 필요했으리란 생각이다.

임권택의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인 아버지 유봉과 누나 송화와 함께 떠돌며 고수 노릇을 하던 동호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견디기 어려워 송화에게 “그까짓 소리하면 밥이 나와 쌀이 나와? 누나도 이제 그따위 소리 때려치우란 말이여” 하고 소리친다. 그 소리를 들은 유봉은 “야 이놈아, 밥이 나오고 쌀이 나와야 소리를 허는 거시냐?” 득음을 허면 금은보화도 나라님도 부럽지 않은 것이여 이놈아“ 하고 동호를 나무란다. 하지만 그 득음이라는 경지에 이르렀어도 그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소리‘라는 말의 근저에는 이미 대중의 평판을 깔고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갈채는 기쁨과 감동의 결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문학적인 수입을 거두는 슈퍼스타는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다. 세상 살아가면서 내 속에서 갈채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면 행복한 삶이리라. 하지만 기쁨이나 행복도 슬픔이나 불행이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고 권태가 없으면 희락도 없으며 실패를 맛본 자만이 성공의 단 열매를 맛본다. 찬란한 빛을 발하는 진주는 진주조개의 오랜 고통으로 만들어진 결과물 아니던가?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과 위로를 주는 훌륭한 예술품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하늘나라를 비유로써 설명하기를 어떤 사람이 귀한 보물이 묻힌 밭을 발견하였는데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 것과 같다고 했다. 예수가 들어 쓴 비유가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의도는 가장 고귀한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가치 지향적인 삶의 태도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역사 속에서 찬란한 예술작품을 남긴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을지언정 완벽을 향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匠人(Maestro)은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수가 얕고 가벼운 하수들은 자신을 돌아보며 ‘이만하면 되었다’ 하며 쉽게 타협한다.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더 이상 갈고닦기를 멈춘다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비판한 사람을 원수로 여긴다.

내가 종종 겪는 곤란한 상황 중의 하나는 아는 가수의 독창회나 그와 비슷한 연주회를 보러 갔을 때이다. 연주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는데 연주가 끝난 후 나에게 “나 오늘 어땠어요?” 하고 물어볼 때 나는 정말 곤란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진심으로 “참 좋았다”라고 말한 적은 평생을 통하여 몇 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맘에도 없는 말로 잘했노라고 칭찬을 하곤 했다. 만약에 내가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고 진심을 토로했더라면 그 말을 들은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나를 원수로 여겼으리라. 진실은 때로 아니 종종 아프게 다가온다. 집에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에게 잘 오셨다고 해야 하고 아름답지 않은 여인에게, 남자에게 '아름답다. 잘 생겼다'라고 해야 하며 허섭한 시를 쓰는 시인에게 '시가 참 좋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한 거짓들이 온 세상을 편안하게 함으로 사람들은 진실 대하기를 두려워한다. 거짓 갈채에 익숙해지면 그 순간 예술가는 성장을 멈추게 된다.

정확하게 판단해 주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여 개선의 방법을 제시해 주는 조언자나 스승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스승은 갈채하는 사람이 아니라 꾸짖는 사람이다. 사심 없이 진실을 말하며 제자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에게 꾸지람을 듣고 끊임없이 정진하여 만인에게 갈채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영혼 없는 칭찬에 안주하여 성장을 멈출 것인가의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 20년이 넘었다. 처음 스승을 대했을 때 하는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했던 나에게 스승은 진실을 말해주었고 나는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가수인지 깨달았다.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래 수없이 지적을 받았다. 끊임없이 절망하고 그 절망감을 이겨내기 위해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스승은 기꺼이 가르쳐 주셨고 나는 지금도 스승께 지적을 받는다. 지금껏 스승께 받은 지적이 9할이라면 들은 칭찬은 1할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완벽한 가수가 아니고 극복할 수 없는 한계도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나로 하여금 진실을 보게 해주는 스승이 계시기에 해마다 조금씩 기량이 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 행복하다. 나는 엄청나게 뛰어난 가수로 기억되기보다는 끊임없이 완벽을 향하여 자신을 갈고닦았던 가수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자라야 할 것은 예술적인 기량만은 아니다. 사람이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지금껏 유지되어온 인류의 역사가 사건과 사건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낸, 씨줄과 날줄로 엮인 하나의 緣起의 결과라고 볼 때 그 어느 작은 삶이라도 무가치한 것은 없지 않을까? 인간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할 때에 비로소 성립되는 말이다. 즉,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겪는 슬픔이나 기쁨은 모두가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천재지변에 의한 재난은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시나브로 그 아픔이 사라지게 되며 심지어는 무용담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하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삶의 끝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트라우마가 되지 않던가?

사람은 누구나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혹자가 말하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그렇듯 모든 사람은 남에게 칭찬받기를 바라지만 칭찬이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過猶不及이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특히나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칭찬이란 巧言令色이나 아첨이 되어 그것은 받는 사람이 진실을 직시할 수 없게 함으로써 오히려 커다란 해악이 되는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하나의 온전한 인격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칭찬과 비판이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둘 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한다. 칭찬은 용기를 주고 격려하기 위하여 필요한 단물이라면 비판은 성숙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쓴 약과 같은 것이다. 나는 칭찬을 좋아하는가? 비판을 좋아하는가?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진심과 사랑이 담긴 정직한 비판이다. 새해에는 칭찬보다는 나에 대한 비판에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

 

 

성악가 송현상
성악가 송현상

 

바리톤 송현상

연세대 음대 성악과 졸업

국립합창단원 출신

뉴욕 메네스 음악대학 석사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 박사

한국 챔버 코랄 합창단 지휘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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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농 2020-01-04 12:57:17
철학적 소양을 주신 귀한 글을 청송군민신문에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좀 읽을수 있도록 청을 올립니다

갈채 2020-01-04 11:51:37
촌에 까지 찾아오셔 남겨주신 귀하고 좋은 글에 갈채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