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청송의 정신
icon 박명규
icon 2020-02-12 11:14:31  |   icon 조회: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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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송에 귀향해서, 아니 떠난 일은 없었지만, 부모님 덕에 마음껏 공부하고 놀다 오니 30년간 대구사람 되었더라.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는 빨갱이 하나 저기 농사하러 왔단다.

나는 그들을 본 일도 밥 한 끼 먹은 일도 없는데 그들이 내가 빨갱이인지 어찌 알까?

고향에 오니 나도 모르는 보호자가 있더라.
한약방 하는 김**

나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밥만 먹으면 다방에서 나를 빨갱이라 하더란다.
알고 보니 박** 장로였다.

나는 고향에서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거나 버리장 머리 없는 짓을 한 일은 없었다.
아니 그럴 시간 공간도 없었다.

청송에는 김영삼, 노태우 대선후보 홍보요원은 있었어도 김대중 선거 지원자는 없더라. 그기 87년인가 그런 것 같다.

왜? 김대중은 빨갱이니까!

빨갱이 대선후보 누가 함께 할 것인가? 빨갱이인 내가 해야지.
선대위에 지원 10원도 받은 일 없이 순수 내 돈으로 봉고차 하나 빌리고 앰프 하나 설치해서 현수막 하나 달고
청송의 바위덩이를 향해서 달걀을 던지기 시작했다.

청송 한 바퀴 돌고 나니 기류가 이상하더라.
몽둥이 든 젊은이들, 앰프선 끊어서 연설 못하게 하는 팀. 빨갱이라고 육탄전 벌이는 어떤 늙은이.

또 하나 이상 하더라 50대 정도 되는 어른들이 많이 보이드라. 박수치더라.
연설 마치고 식사하려 가는데 밥값 낼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더라.

같이 식사하니 그 인원이 84명 이더라.
누가 밥값을 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회원화 하니 84명이더라.
그래서 '84 동지회'라 칭하고 나의 동지가 되었다.

그 분들의 이야기 생활은 정말 콩 농사, 보리 농사하는 농민이더라.
청송에 항일운동하던 가족의 일부이며 그들과 연비연사가 있더라.
자유당의 폭거에 입을 닫고 숨어 살던 사람이더라.

내가 입을 여니 그들도 서서히 조상들의 무용담도 들어 내 놓더라
걸어서 영덕까지, 영해까지 그리고 일제 부역자들 때려잡던 조상들의 무용담 .

청송군민신문 덕에 의병활동이 그렇게 뿌리가 깊고 폭넓고 많은 분들이 있었다는 것을 수치적으로 알게 되었다.
평소에도 알고는 있었는데

그때보다

지금의 청송은 더 바위 덩어리다.
화강암이다.

이제 청송은 그 바위, 화강암을 향해서 계란이라도 던져야겠다.
이제는 天時不如地利(천시불여지리), 地利不如人和(지리불여인화)라
천시는 4. 15 인화는 청송군민신문 / 대화의 마당에서 친구들과 서로 일깨우는 사랑을 던져 주십시요.
인화의 광장 청송군민신문이 있잖아요.
청송군민신문이 있잖아요.!

그래도 함께 던질 바보들도 함께 하면 힘이 안되겠나?

이제 일제강점 100년 전쟁을 마무리할 시점이라 더욱 마음이 무겁다.

민주주의 맛도 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
일당 독재 부패의 고리, 그 끈을 잘라야지 않겠나?

거짓과 보이지 않는 테러 공화국 청송을 시민광장 민주주의의 맛을 보아야 하지 않겠나?
그 맛은 달고 쌍큼하다는 맛과 향기를 나누어야 하지 않겠나?

향기로운 청송, 맛집 청송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우선 향기롭지 못한 쓰레기 봉투는 치워야 하지 않겠나?

향기 있는 청송의 그날까지 청송군민신문과 함께

2020-02-12
박명규 010 2885 4940
2020-02-12 11: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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