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잘 내보내기만 해도
icon 서승희
icon 2020-01-22 18:56:19  |   icon 조회: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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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저녁 우리 동네 돈까스 집 가츠동에 갔다. 다들 도시 어디론가 갔는지 텅 빈 가츠동이 우리를 반겨주니 좋았다.
오마나, 아무도 없네!
주인 눈치도 없이 나온 이 말이 뒤늦게 미안해졌다.
제일 안쪽 큰 탁자를 차지하고 앉으니 좀 뿌듯하기도 했다. 널널한 게 가츠동 전체를 우리가 전세를 낸 느낌이었다.
치즈돈까스와 냄비우동, 모듬떡볶이를 시켰다. 둘이서 3인분 시켜서 푸짐하게 먹었다.
먹기 전에 딸은 화장실에 한번 갔다 왔는데 나는 그다지 생각이 없었다.
다 먹고 마트에 들러 콩나물과 김자반, 두부를 사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윽!
갑자기
똥이 쌀 것 같았다.
느낌 상 설사는 아니고 아주 굵직한 것이 엉덩이에 걸려 있어 보였다.
가츠동에서 딸이 화장실 갈 때, 마트에 들렀을 때 신호가 조금이라도 왔다면 좋았을 것을 뭔 놈의 똥이 이다지도 예고도 없이 콱 내리치듯이 오단 말인가.
아 ~ 어쩌란 말이냐 묵직한 엉덩이
아 ~ 어쩌란 말이냐 예고도 안 하고

참고로 한 달쯤 전에 계단에서 굴러 복상씨뼈에 금이 가서 그때 기브스를 하고 다니고 있었다. 똥이 튀어나올 것 같아도 뛸 수가 없다. 힘을 많이 주면 씨큼 찌릇 뭉클뭉클 발을 아파서 살짝살짝 땅에 대어야 했다. 입맞춤으로 치자면 살짝 뽀뽀하듯이 말이다. 꾹꾹 눌러댈 수 없으니 절뚝절뚝 거리며 조심조심 걸었다.
발은 조심조심 디뎌야 하고, 똥은 KTX급으로 빠르게 풍뎡 내려와서 똥구명 역에 딱 떨어졌다.

아 ~
아 ~ 으
으 ~ 으
"엄마, 괜찮아?"
"으 ~ 괘 ~ 엔 ~ 차 ~ 나."
"아 ~ 흐 ~ 으."
"엄마 어떡해? 괜찮아?"
'아, 진짜, 니가 괜찮아 괜찮아 물으니 더 안 괜찮다, 쫌 가마 있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나 급해서 그 말도 안 나오고 그저
아 ~
우 ~
아 ~ 우
만 나왔다.

집 근처 사과즙 짜는 가게 앞 쯤에서
"으아아아아 아우 우우우우우우우"
괴성을 지르니
"엄마, 고정해. 엄마 체면을 생각해야지. 엄마, 정신 좀 차려!" 하는 딸의 말이 우습지도 않았다.
아 ~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엉덩이 까구 주저앉을 데 없나 하고 말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데는 없고 그저 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딸이 얼른 뛰어가사 현관문을 열어놓고 나는 부지런히 걸었다.
집에 가니 화장실 문도 활짝 열려 있어서 바로 직행했다.

아호
똥만 제때에 잘 눠도 얼마나 행복한지.
세상만사 다 편했다.
2020-01-22 18: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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